칼국수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늦은 밤 칼국수 반죽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다음 날 방망이로 밀었습니다.
어릴 때 엄니가 방바닥에 종이를 깔고 긴 홍두깨로 칼국수를 밀면 우리 오남매는 무릎을 꿇고 나란히 엄마가 국수를 미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국수를 다 밀어 착착 썰고 나면 혹시나 남겨 주실지도 모르는 국수 꼬랑지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얇게 민 국수 꼬랑지는 아궁이에 구워 먹으면 맛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맛은 이태리 피자의 도우 맛이랑 비슷했습니다. 물론 국수 꼬랑지를 남겨 주시는 일은 잘 없었지요.
조선 호박 툭툭 썰어 넣은 거 외엔 별 양념 없어도 그 누른국-이라고 불렀음-은 참으로 맛있었고 늘 양은 모자랐었습니다.
그걸 생각하며 호박을 채치고 감자만 넣어 멸치 육수를 내서 끓여 봤습니다.
면발은 지나치게 쫄깃했는데 하룻밤 숙성시키지 않고 바로 밀어서 했으면 쫄깃거림은 덜 했을지 모르겠지만 면발은 훨씬 묵직했을 것입니다.
흠...
문득 엄니가 보고 싶은 요즘입니다.
수능 사회탐구 과목에서 생활윤리를 공부하고 있는데 지금 단원이 '삶과 죽음의 윤리' 단원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단순하고 짤막한 서술이, 온 마음을 헤집고 머리를 헤집고 묵직하게 돌아다닙니다. 허허.
나이 먹으니 그 짤막한 서술들에서 깊은 사유-??!!-가 샘물처럼 솟아납니다.
그리고 문득 돌이켜보니 어느 순간부터 어떻게 죽을까에 대한 생각을 쉬지 않고 쉬지 않고 하고 있었습니다.
자알 죽어야지...자알 죽고 싶다...를 생각합니다.
공자와 석가모니와 장자와 플라톤, 에피쿠로스 학파, 하이데거까지...죽음에 관해 한마디씩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게 자살의 문제
여기서도 유,불,선은 물론 칸트, 쇼펜하우어도 한마디씩 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죽음은 내 것이다!! 라는 것.
시험 공부가 단순한 지식이 되지 않고 삶을 성찰하고 앉았으니 효율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리 과목이나 세계사 과목을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제자가 지난 주에 결혼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치렀던 터라 결혼식 끝나고 캠퍼스를 실실 걸어 정문까지 왔습니다.
바닥에 선명한 베리따스... 진리.
내 나이 열 일곱이나 열여덟 무렵 내꿈은 철학을 공부해서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꿈'이라고 말한 것을 보니 이루어지지 않을 예정이었던 모양입니다. 하하하
그때 그 열 여덟 무렵에 읽었던 책들에 수없이 등장했던 낱말.
'진리'
대단히 애매하고 추상적이었으나 그래서 매력 있었던 낱말.
나이 들어서는 '정의'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정의롭게 살자. 부끄럽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