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냉장실이 고장이다.
얼마 전부터 소리가 좀 심상찮게 나더니 냉장실 냉기가 거의 사라지고 냉각기 부근만 유리로 된 선반이 차갑다.
하여 검색을 해서 얻어낸 결론은 냉각기에 얼음이 잔뜩 끼었구나... 였고 주말에 냉장실을 드러내고 냉각기 부근 나사를 풀었다. 결과는 냉각기 뚜껑-??-이 열리지 않아서 씨름만 하다가 말았다.
지난 해에는 냉동실이 말썽이어서 비슷하게 냉각기 뚜껑을 열다가 힘에 부쳐서 못 열었었다. 그래도 A/S 안 부르고 코드 뽑아놓고 기다려서 해결...
이번엔 심하게 얼어붙었나 보다. 결국 A/S신청을 했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 냉동실의 식재료만 아니었으면 코드 뽑고 기다렸을 터인데 이번에 냉동실이 육류랑 생선 따위로 제법 차 있어서 불가능하다.
하여 계란을 삶고 있다. 냉장실에 있던 계란 네 개를 그냥 두면 상할 듯 해서-이미 며칠 실온 수준에 두었음- 삶아 놨다가 오며 가며 까먹으면 된다. 졸지에 베란다가 냉장실이 되어 김치며 채소 따위가 나가 있다. 유리창 열어놓으면 그래도 밤에는 영하이거나 냉장실 온도-2도-랑 비슷해진다. 물론 낮과 밤의 온도 변화 때문에 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냉장고 산 지 15년 째-2006년 8월 16일에 샀다-. 벌써 15년 전이라니.... 시간은 정말 무섭다.
2006년 8월 16일에 썼던 나의 냉장고 사용 오디세이
냉장고를 사다!!
내가 가졌던 처음 냉장고는 50리터쯤 하는 음료수 전용 냉장고를 친구가 시집 가면서 물려준 것이었다. 작은 플래스틱 김치통이랑 작은 음료수 몇개 들어가면 꽉 차는 것이었는데 원도어에 그나마 냉동부분도 있었다. 하여 조금 위쪽으로 과일이나 야채라도 올려놓을라치면 졸지에 냉동 과일이나 야채가 됐다. 하지만 단칸방에 별로 사다 쟁여놓을 만큼 넉넉한 생활이 아니었던지라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냉장고가 작으니까 혹 시골집에서 야채라도 갖고 오면 부랴부랴 해 먹었던 터라 의외로 버리는 것이 거의 없었다.
두번 째 냉장고와의 만남은 첫번 째 냉장고와 같이 살던 셋집에서 -8년을 살았다- 독립된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작은 집으로 가면서 이루어졌다. 아는 사람한테서 중고 냉장고를 샀는데 250리터쯤으로 기억된다. 한동안 냉장고가 커서 좁은 부엌의 찬장 대용으로 쓰기도 했는데 문제는 이게 너무 낡은 것이었는지 그것은 얼마 안가 냉동실에 성에가 끼면서 한달에 한 번 쯤 부엌칼을 가지고 두터운 얼음덩이를 쿵쿵거리며 제거해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어느 날 들들거리며 전혀 냉기가 나오지 않음으로서 최후를 맞고, 지금 쓰고 있는 225리터 짜리 새 냉장고를 샀다. 앞의 냉장고의 소음과 냉동은 전혀 안되면서 성에가 굳어 얼음덩이가 되는 냉장고에 비하면 새 냉장고는 얼마나 산뜻하고 그야말로 쿠울하던지... 어쨌거나 냉동실에 얼음도 얼고 해서 냉커피도 타먹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냉동실에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쌓이면서 얼음 얼릴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널럴했던 냉장고는 슬슬 잡동사니로 쌓이기 시작했고 종종 열어보지 않은 야채실에서 검은 봉지에 쌓여 있다가 물이 질컥거리며 상한 야채들이 발견되곤 했다. 게다가 몇 년 전에 야채실 유리 선반이 수박 한 통 올려 놓으려다 쩌억 깨지는 바람에 누런색 박스 테이프로 줄줄 감아 붙여 쓰고 있는 터에-이 때는 A/S를 받아야지 했었다-맨 윗선반마저도 쩌억 반으로 쪼개졌다. 하여 그것은 '취급주의'라고 붉은 색으로 써있는 박스 테이프로 둘둘 감았고,-이때쯤 냉장고를 사야겠군, 하고 생각했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마지막 남은 가운데 선반마저 또 쩌억!!!! 쪼개졌다. 그걸 다시 '취급주의'라고 써있는 흰색 박스 테이프로 감으면서 냉장고를 당장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여 다섯 명이 한달에 한 번 하는 계가 있는데 곗돈만 타믄 사야지... 하는 터에 엊그제 곗돈을 타고야 말았다. 하긴 탄 것은 아니고 냉장고 사야겠다는 말에 착한 친구들이 양보의 미덕을 발휘한 것이다. ^0^
사야지 결심하고는 그래도 오랫동안 이것저것 둘러보고 검색해 보고 물어보고 했었다. 나란 인간은 원래 좀 밍기적밍기적 하는 인간인터라 결심하고 실천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처음엔 지금 쓰는 냉장고와 더불어 쓰고-공부하러 오는 아이들 음료수 냉장고로- 좀 적은 용량의 냉장고를 사려고 했었는데 무신 냉장고를 영업집도 아닌데 두 개씩 쓰냐고, 그냥 큰 거 사는게 나중에 더 좋을 거라고 하길래 그럼 그래야겠군 하고 500리터를 사기로 정했다. 그러던 차에 또 누군가 양문형 냉장고가 오히려 공간 활용에 더 효율적이라는 말에 그럼 양문형으로 살까?로 마음이 바뀌었다. 하여 양문형 중에 가장 작은 걸로 결심을 했는데 또 이번엔 이왕 사는 거 좀 큰게 나중에 후회 안 하고 좋을 것 같다는 말에, 것도 그런 것 같아서 제일 적은 용량보다 한 단계 높은 걸로 사고야 말았다. 차암... 귀도 얇은 인간이다. ㅋㅋㅋ
옛말에 '사람과 그릇은 있는 대로 쓴다' 라는 말이 있다. 냉장고가 커졌으니 뭐 이것 저것 또 채워 넣어지겠지.
그러고 보면 내가 큰 냉장고 사기를 저어한 것은 나중에 좁은 집으로 이사가면 곤란할 것 같아서였는데 누가 듣더니 큰 집으로 이사갈 생각을 해야지 무신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핀잔을 했다. 듣고 보니 과연!! 맞는 말이다. 성장발전 할 생각대신 몰락할-??-생각을 하다니...
하여 삼성 지펠SRS-626LCH홈바형 냉장고를 사고 만 것이다.
좋다!!! 난 부자다. 혼자 사는 주제에 초-??-대형 냉장고라니.... 괜히 소박한 인생 업그레이드한 기분이 든다. 후후후
어쨌든 냉장고는 다음 주말에나 올 것이고 친구들과는 냉장고 입주기념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ㅋㅋ.
각자 냉장고에 채워 넣어야할 물품들을 하나씩 사주겠단다. 계란이며 음료수며 냉장고용 탈취제며...
나는 역시나 지지리 복많은 인간이다. ^0^
하여 또 나는 십년 쯤을 같이 할 말없는 사물 친구를 얻은 것이다.
때때로 오래된 사물은 오래 된 친구같다. 묵묵하고 말없는... 그러나 그것들은 종종 너무나 쉽게 버려진다. 그것들에 마음이거나 정신이란 게 있다면 섭섭하겠지? 흠... 분명 섭섭할 것이다.
냉장고 살 때 10년 쯤 함께 할 거라고 생각한 데 비하면 오래, 묵묵히 나의 사물 친구는 15년 동안이나 곁을 지켜주고 있다.
어이, 고마우이 냉장고 친구!
그나저나 애이에스맨은 언제 오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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