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다시 또 냉장고 이야기

오애도 2021. 1. 29. 07:28

 냉장고는 열흘 정도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성에가 끼면 자동으로 열선에 열이 발생해 그것을 녹여 줘야 하는데 그것이 끊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우선은 성에를 녹여서 당장은 정상으로 돌아오겠지만 조만간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열흘... 마치 중증 환자에게 내리는 시한부 선고 느낌. 

친절한 에이에스맨은 다소 비장하게,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 일주일 안에 매장에 들러 냉장고를 보시는 게 좋겠다고했다. 

원인이 뭐냐는 질문에 연식이 오래 돼서 그렇다고 조금 조심스럽게-라고 느낀 것은 기분 탓??- 말하는데 나는 딱 더 생각할 게 없었다. 냉장고의 수명은 10년에서 15년이라고... 이 정도 말썽 없이 쓰신 거면 자알 쓰신 거라고도 했다. 

에이에스 한번 안 받고 이렇게 그나름 깨끗하고 깔끔하게 한방에 수명을 다하고 가다니... 착하고 고마운 벗이다. 

 나도 이렇게 냉장고처럼 크게 말썽 없이 살다가 깨끗이, 수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갔으면 좋겠구나... -물론 큰 말썽 한 번은 치렀지만 그 정도는 내게는 여러 의미로 '그야말로' 축복!! 같은 말썽이다.-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엊그제 같았던 15년 전 냉장고 오디세이를 읽으며 그 15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를 깨닫는다. 

그리고 새 냉장고 검색을 하면서 다시 10년 정도를 생각한다. 그 10년의 시간은 또 얼마나 다양한 색깔들로 채색될 것인가... 

하여 특정한 사물,  사건으로 재어지는 시간의 단위는 때로 굉장히 감성적이고 또한 감각적이다. 

 어쨌거나 이번엔 좀 작은 걸로 사야겠다.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특이한 현관구조 때문에 냉장고 분해를 해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약한-??- 이웃 덕분에 사다리차를 대지 못하게 해서 계단으로 올라옴. 그 이웃은 잘 살고 있는지 궁금 ^^;;- 아마 조금만 작았더라면 문짝 분해까지는 안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점점 더 덩치 큰 것들이 부담스럽다. 물론 대단히 넓은 집에서 살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홀로 사는데 집이 지나치게 넓은 것도 분명 기가 빨릴 것 같다. 흠... 물론 이 도시에서 넓고 큰 집에서 살 여력 따위도 없지만. 하하하. 

 15년 전에 큰 냉장고를 사면서 나는 앞으로 쌩쌩 힘차게 나아갈 것이며 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높이거나 넓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소박하게 줄이고 낮추고 덜어내는 시간이 되리라.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15년을 함께 한 내 오래된 냉장고...

 사족:  냉각기 얼음을 제거해 준 친절한 에이에스맨은 더 이상 해 드릴 게 없으니 출장비만 받겠다고 하고는 정말 친절하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회사 방침이겠지만 괜히 미안해지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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