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엊그제...

오애도 2016. 9. 2. 01:00

엄니는 청주로 가셨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큰오빠 내외가 모시고 내려갔다.집 근처 요양원으로...

병원에 계시는 보름동안 엄니는 참혹하게 괴로워 하셨다. 뇌경색으로 인한 폐렴이 왔고 입원하기 전부터 겪던 불면의 밤을 고스란히 아니 더 참혹하게 겪으셨다. 밤새 엄니는 몸이 굳어지면서 내 이름을 부르셨고 둘째 이름을 부르셨고 세째 이름을 부르셨고 그리고 마지막엔 엄마... 를 부르셨다. 나이가 여든이신 엄니도 엄마를 부르시는구나... 그렇게 퇴원하기 전날은 몇 시간동안 엄마를 부르셨던 내 어머니...

엄니 가시고 나는 그날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정말 몇시간을 아무렇지도 않았다. 집에 와서 엄니가 덮으셨던 이불을 정리하는데 가슴께가 죄듯이 아팠다. 목이 자꾸 꺽꺽 경직돼 왔다.

교통사고가 그럴 것이다. 뼈가 부러지고 더러는 내장이 터졌을 지도 모르는데 처음엔 하나도 안 아플 것이다. 아드레날린 효과던가...

잠시 그렇게 꺽꺽 목을 죄고 이를 악물고 있으면 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날도 다음 날도 방을 치울 수가 없었다. 침대 얼룩만 봐도 침대 옆의 엄니가 쓰던 로션만 봐도 갑자기 가슴께가 굳어졌다.

저녁 일곱시 쯤 엄니가 데이케어센터에서 오실 시간이 되고 나는 비로소 할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매일 엄니가 오기 전 과일을 사오고 아이스크림을 사다 놓고 그리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엄니를 기다렸었다.

 사실 어떤 논리로도 엄니가 오시는 그 일곱시 무렵의 설렘을 설명할 수 없다. 어린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의 설렘이 그런 것일까?  

 엄니 가시기 전날 사소한 일로 나는 울음이 터졌었다. 아이처럼 보채는 엄니가 속상해서 그걸 핑계로 병원 이불로 입을 막고 꺽꺽 오랫동안 오랫동안 엄니 앞에서 울었다. 한참을 듣고 계시던 엄니가, 애도야~ 애도야~ 자꾸자꾸 부르셨다. 울지마... 울지마... 안그르께...

눈물 그렁한 얼굴로 엄니를 보는데 엄니도 나를 한참 물끄러미 보셨다. 울고 싶어도 언제부터인지 눈물이 안 나온다는 엄니는 그러나 울고 계시는 게 마음으로 보였다. 그리고는 힘겹게 손을 들어 내 얼굴과 머리를 한번 쓰윽 쓰다듬어 주셨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정신이 참혹하게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명민한 엄니는 이미 우리 집이 아닌 청주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을 때 당신이 어디로 가시는 지 알고 계셨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말대로 엄니한테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시지 않았다면 도 좋아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엄니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인정하는 일이 힘들었을 뿐 까짓 물리적 힘듦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니를 다시 모신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니 와 계시는 동안 종교도 없는 주제에 하루도 안 빼놓고 매일 밤마다 기도했었다. 엄니 좀 낫게 해 주세유...


 문득 문득 하루에도 몇번 씩  턱밑이 굳어지면서 가슴께가 아프다. 무서워서 마음 저 밑바닥을 들여다보기가 겁난다. 그렇게 모르는 척 하면 아무렇지도 않다. 정말로...

 

엄니 입원하실 때가 주말이라서 찰옥수수 몇 자루를 사다 놨었다. 엄니랑 있으면서 나는 엄니가 그렇게 옥수수를 좋아하시는지 처음 알았었다. 낮에 냉장고 야채실을 열었더니 잎이 누래져서 비닐봉지에 담겨 있길래 삶아서 아무 생각없이 먹었다. 한 자루 반을...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의 들끓음도 잦아들 것이다.

엄니도 우울증만 치료되면 또 좋아지실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삶이 가고 우리들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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