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잠깐 시내엘 나갈 일이 있었다.
며칠 전에 사 놓은 새 바지를 입는데 어째 이상하게 앞은 길고 뒤는 짧아서, 재단이 잘못된 바지인가... 아니믄 내가 배가 나와서 이렇게 언밸런스하게 뒤쪽이 짧은가 하는 지극히 양심적인-??- 생각으로 입고는 불편해 하면서 나갔다.
그런데 밖에 있는 동안 정말 미친듯이 바지가 줄줄 내려오는 것이 민망하게 기회만 되면 그야말로 골타리 추켜 올리느라 정신이 없없다. 잘못하면 어기적어기적 무릎까지 내려올 거 같아서 신경쓰여 죽을 뻔 했다.
그러면서 내에 무신 바지를 이따위로 만든겨~~ 입었으니까 바꿀 수도 없고 돈만 버렸네. 잘 뜯어서 퀼트천으로나 써야하나 어쩌나... 누구 줄 수도 없고... 살 빠지면 갠찮으려나...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투덜투덜투덜....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바지를 벗었는데 날아갈 것 같았다. 정말 사소한 불편함은 사소한 일상을 얕은 지옥처럼 성가시게 만든다. 그리고는 바지 벗어 휙!! 던져놓고 엄니랑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문득 혹시 내가 바지를 둘러 입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바지를 살펴 보았다. 아까 밖에서 분명히 앞쪽에 주머니가 있어서 손을 넣은 기억이 있어서 살펴봤더니 아뿔싸!!! 주머니는 뒤에만 있고 앞에는 주머니 모양으로 스티치만 되어 있었던 거였다. 허거거거걱!!!!!!!
그러니까 종일 나는 바지를 앞뒤로 둘러 입고 다닌 거였다. 당연히 엉덩이 쪽이 앞으로 왔으니 앞은 크고 뒤는 밑이 짧아 질질 내려올 수밖에.... 어이가 없어서 혼자 클클 웃었다.
그리고는 엄니한테 가서 그 얘길 했더니 엄니도 클클 웃으셨다. 세상에...
어디선가 본 얘기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항아리 가게에 가서 엎어 놓은 항아리를 보고는 위가 막혀 있다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밑을 보더니 아니 밑은 뚫려 있잖아!!!! 하고 화를 냈다던가...
가끔 우스갯소리로 아이들한테 해 주던 얘기였다.
나야말로 그 어리석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짓을 한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지를 둘러 입고 밑이 짧다고 내에 궁시렁거리고 옷 만듣 사람 흉보고 팔았던 가게를 헐뜯었다. 이게 무슨 어이없는 일인가... 그 몇시간을 불편해 하면서도 정말 추호도 내가 옷을 둘러 입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리석다는 것은 실수와는 다르다.
실수였는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 이다. 그리고 아주 잠시 맑고 유쾌하게 나를 들여다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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