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영화와 연애 중.

오애도 2014. 1. 25. 01:54

고향 친구가 다녀갔다.

딸내미 라식 수술하는데 따라온 터라 수술 기다리는 몇 시간이 만난 시간의 전부였지만 참으로 반갑고 반가운 어릴 적부터 가장 친했고 귀한 친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나 40년 넘었지만 자주 만나지 않아도 '친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다.

속 깊고 선량하고 신앙심 깊은 내친구 복자! 이름 그대로 참으로 복많은 친구다. 그 친구를 만나면 난 늘 겸손해지고 부끄러워지고 마음 깊이 고맙다. 그게 뭘까?

 

 친구 보내 놓고 일하러 가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KFC에 들어가 얼마 남지 않은 책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다아 읽었다. 근래 들어 정말 페이지 넘어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굉장히 재밌어서 그야말로 아끼고 아끼며 읽었다는... 소설이 아니니까 휙!! 읽어지지 않아서 천천히 뭉근히 읽어 냈다.

놀라운 책이다.

 600페이지가 넘지만 읽는 내내 단 한 줄도 머뭇거림 없이 살아 있는 진술로 다가와서 이게 무슨 일일까 싶을 정도이다. 뭐 그렇다고 시나리오를 술술 쓸 수 있게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그저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 통찰, 이론, 사상 따위가 다아 들어 있었다.

 명작 시나리오로 추앙받는-??- 영화 '차이나타운'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걸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어디서 구해야 하나...

20년도 훨씬 전에 봤지만 페이 더너웨이의 대사를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그녀는 내 동생이예요.' -잭 니콜슨한테 뺨 한 대 맞고-

'내 딸이예요.' 다시 한 대 맞던가...

처음에 저 대사를 듣고 난 이해를 못 했었다.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좀 지난 후 나는 그 놀라운 반전에 담긴 추악한 의미를 깨닫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한 줄 글은 못 쓸 게 뻔하지만 나는 예전에 보고 나를 시달리게 했던 영화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특히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 7의 봉인'

열 여섯 무렵 티비에서 보고 정말 무슨 얘기인지 당최 감을 잡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서 거의 닷새 정도를 이상한 우울과 허무에 시달렸었다.

 사실 제목도 기억 못 했었는데 나중에 대학 들어가 인상 깊은 장면 얘기했더니 영화과 교수님이 제7의 봉인이라고 알려 주셔서 다시 한 번 봐야지 했다가 못 봤다.  

 페스트가 창궐했던 중세가 배경이었는데 그 저승사자와 내기를 해서 지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같은 것.

 베르히만 감독의 영화는 '화니와 알렉산더'도 그렇고 한 큐에 무슨 얘기인지 알아내지 못하는데-너무 어릴 때 봐서 그런지도...-  그의 영화는 워낙 종교적인 깊이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무겁고 무겁다. 지금 보면 어떻게 이해될 지 궁금하다.

 뭐 시나리오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그 어릴 때 내가 영화광이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내 영화적 지식은 그때 쌓인 게 전부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영화도 드라마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안 보게 됐다.

흠...

 

어쨌거나...

 공감대라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건드릴 때 나오는 법...놀라운 인문학적 통찰이 들어 있다.

 며칠 전 트윗의 일부이다.

 

요새...거의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본다.

 

 

'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 중...2  (0) 2014.02.14
폭식 중...  (0) 2014.02.06
독서 중...  (0) 2014.01.09
여전히...  (0) 2013.12.16
참 듣기 좋은...  (0) 2013.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