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잠깐 청계산엘 다녀왔습니다. 산에 오를 때 우중충하던 하늘은, 짧은 코스 끝내고 내려와 지인들과 더불어 곤드레 나물밥 먹고 나오니 눈섞인 비로 내렸다가 젖은 눈송이로 쏟아졌습니다.
올 해는 눈이 참 많이도 내립니다.
그래도 계절의 힘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라서 제법 나뭇가지에 물이 오른 것이 눈에 보일 지경입니다.
지난 주말 울아부지 제사 지내고 아침 일찍 올라와 내리 여덟시간을 수업을 했고-결국 마지막 수업은 못했다- 밤새 동생과 이바구를 하는 바람에 밤도 샜고 그런저런 이유로 목은 더어 잠겼습니다.
저녁에 있는 수업을 캔슬하고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가계부를 쓰고 뜨개질을 했습니다. 몸도 무겁고 눈꺼풀도 아주 무거운 걸 보니 한동한 등한시한 운동 탓에 그 낮은 강도의 운동에도 몸은 힘에 부치는 모양입니다.
하루 쯤 자알 자고 나면 하룻밤 새서 오는 피로쯤은 후딱후딱 풀리곤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이틀은 지나야 원상복구가 되더군요. 아마 나중엔 사흘, 나흘, 이러다가는 밤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정신과 마음을 다 쓰고 싶은 일이라는 게 나타나면 밤새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퀼트 처음 배울 때는 다음 주까지 하면 되는 숙제를 그날로 다 해치워서 끝내고 나면 훤하게 날이 밝았던 적도 꽤 있었는데 지금은 뜨개질을 새로 배우는데도 그 때만큼은 어림도 없습니다. 어쩌면 뜨개질이 훨씬 마음에 들고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벌어먹고 사는 일에 쓰이는 시간은 분명 예전보다 훨씬 줄어서 빈시간은 훨씬 많은데 맨날 과제는 밀리고 밀려서 다른 사람들의 완성속도에 비해 배는 더 걸립니다.
흠...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고 있습니다. 그저 매일매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세상의 문제들에 비켜선 채로 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보다야 백 배는 낫겠지만 좋거나 기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하고도 같은 것입니다.
쉽게 감동받거나 겸손하게 누굴 존경하는 일도 점점 없어지고 특별하게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딱히 그리운 사람도 없는 걸 보니 관계나 가치에 대한 진지한 열정 따위가 사라져 버린 게 분명합니다.
엊그제 신문에 리먼브라더스 파산에 대한 특집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것을 낮에 꼼꼼히 경제 용어들을 탐색해가며 읽다보니 의외로 재밌어서 잠깐 진지하게 경제에 대해 학문적인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이걸 좀 공부해봐?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득 쓸다리 없는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전혀 나답지-??- 않은 핑계를 찾아내는 바람에 씁쓸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엇인가에 호기심을 갖거나 배우면서 한 번도 그것이 이 나이에 쓸다리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그렇게 많은 열정들이 사그라드는 것이 나일 먹는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공자가 40세에는 유혹에 넘어 가지 아니하고 - 不惑-, 50에는 하늘의 뜻을 알았고,-知天命- 60세에는 귀에 거스르는 말이 없으며- 耳順- 70세에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 從心所慾不兪拘-고 했는데 분명 내가 혹하는 것이 없는 걸보니 불혹은 불혹인 모양입니다.
정말 50 쯤 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될른지는... 모르겠습니다. ^^;;
중학교 1학년 도덕책에 나와 있는 걸 보고 어떤 알라가 공자는 왜 이렇게 잘난척을 하냐고 하더군요.
어떻게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아도 거리낌이 없을 수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눔아, 그건 잘난척이 아니라 나이가 70 쯤 되면 그야말로 법도에 어긋나거나 하늘을 거스르거나 하는 일 자체에 욕구가 안 생기니까 어떤 일을 해도 법도나 하늘에 거스를 일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고 말해줬는데 물론 지들이 나일 먹어보기 전에는 전혀 못 깨닫겠지요.
어쨌거나 열정적인 욕구가 많이 사그라들다 보니 심오한 공자의 사상도 쉽게 이해가 간다는... ㅋㅋㅋ.
무덤덤 무의욕... 과 동거 중입니다.
실없는 얘긴 그만하고 일찍 자러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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