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녁에 수업을 하는데 이웃에 사는 아이가 찾아왔다.
선생님... 이거 목포에서 지금 막 갖고 온 낙지인데요~ 진짜 맛있어요. 빨리 드세요~~
하믄서 살아서 꿈틀거리는 낙지 몇마리랑 초고추장까지 놓고 갔다.
그래, 고맙다. 잘 먹겠다고 엄마한테 말씀드려라~~.
수업 중인 중학교 일학년 애들이 그걸 보고 침을 질질 흘렸다.
알라들은, 저거 참기름에 찍어서 반드시 나무 젓가락으로 먹어야 되요.. 무쟈게 맛있어요... 그럼 입에서 꿈틀꿈틀 쫄깃쫄깃 맛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난 산낙지를 못-안-먹는다. 물론 낙지 볶음이나 연포탕, 낙지소면 같은 건 잘 먹는다.
입에서 꿈틀거리는 것도 싫고 애초에 익히지 않은 음식을 즐겨 먹지도 않는데다 충청도 내륙생인지라 생선은 굽거나 조리거나 끓인 것이 맛있다.
어쨌든, 플래스틱 뚜껑을 열었는데 그만 꿈틀꿈틀 다리가 기어나와 종국에는 몸 전체가 스물스물 나오는 것이었다. 으아아!!! 내가 소릴 지르자 알라들이 재밌다는 듯 낄낄거렸다.
선생님,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예요~~ 히히히.
이건 정말 나도 뜻밖인데 그렇게 온몸 근지럽게 진절머리가 날 줄은 몰랐다.
으아아아~~~
예전에 나는 살아 있는 게도 척척 잘라서 꽃게찌개도 잘 끓였고, 어릴 때 닭도 잡아본-??!!- 경험이 있는데-나무관세음보살!!!- 이건 좀 과하게 예민해졌다.
여하간 나중에 애들더러 저거 니가 잘라서 먹고 가라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수업 끝나고 여자애가 진짜로 잘라 먹겠다는 걸, 진짜 해 본 적 있냐고 했더니, 그냥 도마에 올려놓고 자르면 되지요. 가위로 자르면 붙어요~~ 했다.
됐다, 그냥 가라... 그거 보고 있는 것도 끔찍하다....
결국은 냉동실에 넣었다가 두어시간 지나 꺼냈다. 다행히 축.. 늘어져 죽은 것은 분명한데 불쌍하게 먹물을 뿌려놓은 걸 보니 또 스멀스멀 몸이 근질거렸다. 가져온 성의를 생각해서 먹긴 해얄것 같아서 한 마리 꺼내 물에 씻어 칼로 자르는데 꿈틀!!!! 한다. 신경만 살아있는 것이라고 알아도 무서운 것은 무섭다. 초고추장 얹으니 또 꿈틀!!!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작은 것 한 마리는 간신히 먹었고 나머지 세 마리-많기도 해라!!!-는 그만 즉석에서 데쳐 냉장고에 넣어놨다. 안 익힌 것은 찔깃찔깃 고무줄 같은데 살짝 데친 것은 먹어보니 연하고 맛있다. ^^;;
이따가 청양고추에 고추장 듬뿍 넣고 낙지볶음 해서 밥 먹어야겠다. 아니믄 낙지볶음 소면 만들어 친구랑 소주 한 잔을??!!!
나는 무신 박애주의자나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닭고기도 잘 먹고 쇠고기나 돼지고기 생선구이도 잘 먹고 좋아한다. 그리고 뭐 앞으로도 채식주의자가 될 확율은 없다. 생명이라고 치면 식물도 살아있는거니까 그렇게 되면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 살아있는 것이 이렇게 진절머리가 쳐지는 걸까. 마치 온 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여 내가 생선회를 떠야 하거나 혹여 도살장 같은데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 것은 정말 다행이다. ^^;; 세상엔 '내'가 못하거나 안 하는 일을 대신 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쨌거나 어떤 것들은 더 예민해지는 것이 분명하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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