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이면 울엄니는 그래도 한 해 운수를 빌러 절엘 다녀 오신다.
몇 해 전까지 정해놓고 다니시던 암자의 보살님이 노환인지라 그만 암자의 일을 접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가깝다고 생각한 아무 절-??-에나 다니게 된 지 두 해쯤 됐다. 처음 갔다 오셔서 그냥 울 자식들 운수가 어떻냐고 물었을 때 그건 나중에 돈 내고 와서 보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해서 듣고 나는 기분이 나빴었다.
모 울엄니는 말끝마다 부처님의 공덕이며 업이며 덕이며 하는 말따위는 한 번도 안 하시고, 무신 때만 되면 절에 찾아다니며 공양하는 분도 아니다 그저 년초면 자식들 나쁘지 말라고 불전이나 놓고, 손 없는 날 찾아가 백설기 떡 해놓고 산신제 정도 지내는 그야말로 소박한 무속신앙과 불교 신앙이 뒤섞인 평범한 엄니로써의 신자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대부분의 종교는 현세 기복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다. 하여 죽은 후 영혼의 구원이 궁극의 목표라고 말하는 것을 난 믿지 않는다. 지금 '나' 사는 모습이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의 셋팅을 위한 삶인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도 사실 이생의 삶의 평안함을 위해 필요한 미래의 위안 섞인 기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엊그제 울엄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 절의 스님이 주욱 우리 오남매의 운세를 보다가 갑자기 내 것에서 뚝 멈추더니 아아주 나쁘다고 무신 액막이를 하라고 하더란다.
자식들 문제에서는 한없이 어리석어지는 것이 부모맘인지라, 당신 딸이 그런 쪽에 어설픈 사람들보다 더 칼날같은 명민함-????!!!-이 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흔들리는 것은 당연지사... 하여 이번엔 늘 다니시는 철학관에 가서 이러저러한 얘길 들었는데 어쩌면 좋소... 하고 물었더니 그런 돈 밝히는 절엔 다니지 마쇼~~ 하더라고 하셨다. 하하하.
내가 연초에 우연히 찾아갔을 때 박수양반-??!!!-, 운수대통에 앞으로 나갈 일만 남았소, 그동안 당신이 쌓은 덕이-??- 빛을 발할 것이고 어떤 종교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군. 운세 너무 좋으니 혹시 집안에서 잘 다니는 절이나 그런데 있으믄 거기 가서 재수 굿을 하쇼~~ 했었다. 공부 잘하는 놈 데려다 전교 일등 시키믄 좋지 않소. 당신 전교 일등 하믄 나 용한 사람 될거 아뇨? 했었다.
나야 당연히 좋은 운 가졌다고 말한 사람을 믿는다. 내가 어리숙하고 멍청한 인간이 아니니까 뭐 그쯤 진심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여하간 나는 울엄니한테 그런 절엔 가지마요~~ 했다.
오늘 날 아무리 아닌 척해도 사실 신보다 더 숭배되는 것은 그야말로 '황금'이다. 황금이 있어야만 신에 대한 감사도 더 지극해지고, 그게 없으면 그것 좀 달라고 또 지극히 신에 매달린다. 신앙의 척도도 결국 황금의 크기로 재어지고, 또 내 황금 아까버, 믿음과 황금의 크기와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내 식으로 위로하며 황금바치기를 저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스갯 소리...
아주 신앙 깊은 평신도가 죽어서 천당에 갔더니 자리에 앉은 채로 예수님과 하나님이 잘 왔다고 맞아 주셨단다. 그런데 좀 있다가 목사님이 오셨다고 하니까 두 분이 벌떡 일어나 맨발로 나가서 기뻐하며 맞는 걸 보고 평신도의 영혼은 화가 나서, 아니 하나님... 천당엔 차별 없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여기서도 목사님은 우대를 받다니 섭섭합니다...
그랬더니 두 분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미안하다고, 목사가 천당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너무 반가워서 그랬다고...
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나는 믿는 자요~~ 라고 긍정했을 때 믿지 않는 자들보다는 지켜야 할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여 똑같은 죄를 범했을 때 믿는 자들의 죄가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뭐 결혼이란 걸 했으면 결혼한 사람들로서 지켜야할 것들이 있고, 그것은 그것에 대해 예스 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나란 인간은 함부로 예스 했다가 지킬 수 없는게 많으믄, 스스로에게 또는 종교에게 약속 불이행죄까지 겹칠까봐 특정 종교도 없고, 결혼도 안 했다....고 하믄 이건 지나친 자기합리화라고 비난 받을 지도 모른다. 하하.
사이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개인의 욕심을 위해 종교의 탈을 뒤집어 쓸 때 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종이 된 사람이라면 신에 대한 불경죄까지 겹쳐 더 큰 죄가 되는 것 쯤은 계산할 줄 아는 현명함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하간, 물질의 시대에 종교나 신앙심의 척도가 물질인지라 물질없는 사람들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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