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일요일... 내 발자욱...

오애도 2008. 6. 1. 18:57

어젯밤 한 잠 자고 났더니 세 시 반 쯤이었습니다. 어쩌자고 잠이 다시 안 찾아와서리 일어나 부스럭거렸지요.

티비를 켜니, 벗은 남녀의 적나라한 정사신에 한 칸 더 넘어가니 목사님 설교에 또 한 칸 넘어가니 눈이 파란 스님의 설법이 이어졌습니다. 몇 개 채널 지나 홈쇼핑 채널의 격앙된 쇼호스트들의 목소리가 방안의 정적을 흔들어 놓았지요. 그렇게 티비는 성-性-과 성-聖-, 속-俗-이 함께 담겨있는 요지경의 상자입니다.

어슬렁거리며 일어나 화장실엘 다녀오고 어젯 밤 삶아 놓은 계란 한 개를 까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읽다 만 양귀자의 연작소설집 한 권을 읽어 치우고 나니 여섯시였습니다. 주섬주섬 일어나 운동화를 신고 양재천엘 갔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의-새벽인 줄 알았는데 전혀 새벽같지 않았다- 그 묘한 정적을 몸으로 가르며 조용한 골목을 빠져나오니 해는 눈부시게 솟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텅빈 도로가 묘하게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돌아가 청계산으로 목적지를 바꾸려다 분명 시장바닥같은 번잡한 주말 산행이 될까봐 그냥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엊저녁을 거의 굶다시피 했고, 먹은 거라곤 두어시간 전에 커피 반 잔과 달걀 한개가 고작이었으니 한 시간쯤 지나니 슬슬 배가 고파왔지만 허허벌판에 뭐 어쩌라고!! 하면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걷다 왔습니다.

벤치에 앉아 푸르디 푸른 양재천을 멍청하니 바라다 봤습니다. 요즘 들어 점점 세상의 존재에 심히 의심을 해대는 터라 문득 나는 정말 '존재'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만약 내가 죽어 없어져도 세상은 여전히 남아 있을까? 오로지 '나'를 위해 이 넓은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뭐 이런 사춘기 시절에 했던 상념도 떠올랐습니다.

 생기 푸릇한 풍경과는 달리 운동 나온 사람들은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아마 젊은 사람들은 느긋하게 휴일 늦잠을 자고 있을 터입니다.

작년 이맘 때 새벽에 일어나 산에 다니던 생각도 나고 운동 효과도 패턴을 바꾸면 더 효과적이라니까 낼부터는 좀 일찍 일어나 새벽 운동을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돌아와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맛있는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내일 먼 곳에서 친구가 올라온다길레 쇠고기 넣은 미역국이랑, 호두 넣은 멸치조림 따위를 겸사겸사 만들었습니다. 수업 하나를 줄였는데 한없이 느긋한 아침이 됐습니다. 조만간 떼돈 벌기 위해-??!! - 수업을 해야겠지만 -ㅋㅋ- 뭐 안해도 그만입니다. 많이 벌믄 씀씀이만 헤프지 뭐 모자라지만 않으면 됩니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내일 오는 반가운 친구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미래를 기다리고 그렇게 내 삶의 끝날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자알   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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