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너무나 세련된... 드라마 별 순 검

오애도 2008. 1. 17. 11:05

전혀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티비에 흥미가 없어진지 오래다.

지난 번에 케이블로 바뀐 이후 사실  케이블 채널 덕분에 세상의 횡행하는 트랜드를 보는데는 제법 도움이 된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풀로 한 프로그램 다 보는 것은 여전히 못한다. 티비는 큰방에 있고, 하루의 대부분은 책상이 있는 작은 방에 와 있으니 아침에 일어날 때 밤에 자기 직전 우연히 걸리면 보는 게 고작이다. 채널 수가 많아서 당최 공중파 채널 번호도 헷갈리는데 어느 세월에 그걸 찾아서 보겠는가. 그리고 많은 채널에서 예전에 했던 것을 재방송을 하는 터라 어떤 게 본 방이고 어떤게 재방인지 분간도 못한다.

케이블 채널의 많은 프로그램들이 사실 한없이 얄팍하고, 싸구려 호기심을 유발하며, 세상의 트랜드라며 지나치게가벼운 소재를 취해 엉성한 구성에다 뻘쭘한 진행까지... -물론 종종 재치 넘치고 기발한 진행으로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도 있다-길거리서 파는 얕은 음식맛하고 비슷하다. 뭐 길거리 음식은 그렇게 잠깐 길거리에서 먹는 것이다.

 

그중에 퍽!! 필 꽂혀서 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엠비씨 드라마 넷에서 하는 별 순 검...

물론 저것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끝까지 본다.

구 한말이 배경이고 조선 과학수사대라는 부제가 있는데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고증 된거 같지 않고 -그 시절에 그렇게 화려한 의상과 장식이 가능 했을까?- 화려하게 치장된 비쥬얼로 가득찬 대하사극이나 거의 슬랩스틱형에 가까운 과장섞인 캐릭터들이 횡행하는 현대 드라마에 비하면 별순검은 아주 소박하다. 힘 주고 있는 관리들이 등장하지도 않고, 대갓집 안방 따위도 등장하지 않는다. 구 한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주는 한계는 어느 땐 한계가 되고 어느땐 잇점이 되기도 한다. 난무하는 디지털 시대에 보석처럼 빛나는 아나로그적 화면과 이야기 전개 방식을 보여주는데 아주 세련됐다. 그 세련됨은 등장인물의 개성과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과 깔끔하게 써나가는 작가. 삼박자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사실 처음에 우연히 봤을 때 낯선 배우들 탓에 극의 완성도에 심히 의심을 하기도 했는데-이래서 가당찮은 유명 배우들만 섭외하는 것이겠지-세상에!!! 마치 숨겨진 보석처럼 캐릭터 하나하나는 놀라우리만치 살아있고 연기들은 뛰어나다. 특히 배우 유승룡은 매우 매력적이다. 과묵하지만 존재만으로도 무게가 실린다. 온주완이나 박효주 같은 배우들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인데 연기들이 빼어나다.

유승룡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장진 감독의 작품에 주로 출연을 한 배우였다. 연극무대에서 쌓인 연기겠거니 한다. 예전같으면 필 꽂히면 그 자리에서 뒤져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보면서 한 번도 저 사람이 누군지 찾아봐야지 하지 않았었다. 이런!!

차갑고 과묵한 눈빛연기가 가히 압도적이고 굉장히 매력적이다. 한때 멋있어 하던 사람하고 이미지가 비슷해서리 그양반이 배우가 됐나 싶었다. ^^;;

캐릭터들이 나름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는 설정은 CSI의 인물들과 비슷하지만-완벽하지 않은 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하는 것도 요즘 드라마의 트렌드가 된 듯...- 시대적 배경의 한계와 기계적이고 과학적-서양의- 수사가 불가능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터인데도 그런 한계가 외려 힘이 돼 보인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와 서양문물이 혼합되기 시작하는 구 한말의 혼란처럼 난무하는 채널의 홍수와 옥석이 뒤섞인 티비화면에서 그것은 한줌 옥이 분명하다.

 

사족; 드라마는 지난 12월 29일 끝났는데 물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혈을 기울여 본 게 아니라 어떤 게 마지막 작품이고 어떤게 시즌 1편에 나오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지금도 걸리면 열심히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