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서울 행 보따리가 무거운 이유!!

오애도 2002. 2. 15. 08:05
일요일 오후에 내려 갔다가 차례 지내고 부랴부랴 서울로 왔습니다.
앞 대가리-??-가 길고 꼬리가 짧은 연휴일 경우는, 보통 올라오는 길이 고행길인지라 내려가는 그 순간부터 돌아올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돌아올 걱정을 하고 있자면, 마치 서울로 어떻게 하면 잘 돌아올까를 위해 집엘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쨋거나 겨우 차례 마치고, 세배하고, 점심 먹고는 엄마가 싸주시는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차가 막히는 관계로 히터 팡팡 들어오는 버스안에서 엄마가 싸주신 열무김치 익는 냄새가 솔솔 났습니다.
아침에 그렇게 들고 온 열무김치에 고추장 퍽 넣고 싹싹 비벼 먹었습니다.

울엄마는 매일매일 병원에서 주무십니다.
아부지가 병원에서 사시기 때문이지요. 병원의 그 좁은 의자에서 하룻밤에 스무번도 더 넘게 깨다자다 하는 얕은 잠을 주무시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병원에서 주무시고는 아침에 아부지 볼일-대변- 보시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빨래하고, 병원 가져갈 별식 마련하고 그리고는 저녁 시간이 되기전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십니다. 그럴 때 울 아부지, 전화로 얼마나 재촉하고 잔소리-??- 많은지 가끔 다투신답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자식들 내려간다고 하면, 김치 몇 종류 담그고, 청국장, 비지장- 아시나요?- 띄우고, 깻잎 절임하고, 도토리묵 쑤십니다. 그리고는 서울 올 때 보따리 보따리 싸 주시지요.

올 해는 눈이 내리는 바람에 빠졌지만 이때쯤이면 언 땅에서 냉이를 캐 놓았다가 주십니다.

흔히 냉이는 봄나물이라고 하는데 엄마말을 빌리자면 그게 아니랍니다.
햇빛 따뜻해지면 냉이는 겨우내 뿌리에 담았던 향기와 영양을 잽싸게 잎으로 밀어올려 꽃을 피워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봄에 캐는 냉이는 잎이 무성하거나 꽃이 피어있습니다.
뿌리는 가늘어지고 실뿌리가 잔뜩 나 있습니다. 국을 끓여도 향기가 별로 없습니다.
반대로 이렇게 꽝꽝 얼어붙은 겨울철에 양지쪽의 포슬거리는 흙속에서 캔 냉이는, 잎은 자그맣게 갈색을 띠고 있지만 그 뿌리는 길고 실하게 굵습니다.
그걸 캐다가 국을 끓이면 잔뜩 향기로운 냉잇국이 되는 것이지요.
갈색의 침침한 이파리에 하얗게 뿌리가 뻗어 있는 냉이를 보고 있자면, 그 작은 풀 안에 담겨 있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게 됩니다.

그 작은 냉이는 어디서 그런 것들을 배워 품고 있을까요.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잔뜩 자신의 모든 것을 꽁꽁 언 땅밑 뿌리 속에 품고 있다가, 재빨리 꽃을 피우는 그 순발력과 긴장감 같은 것 말입니다.

자연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고 우스워 보이는 것이라 해도, 인간보다 훨씬 겸손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존재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존재 방식도 그 자연과 닮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품고 있다가 꺼내준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들고오는 서울 행 보따리에는 자연과, 인간으로써의 원초적 애정인 엄마의 애틋함과, 엄마가 해 주시는 것은 무엇이건 맛있다고 느껴지는 어리광 쯤이 함께 싸여 있는 탓에 더 무겁게 느껴지는 지도 모릅니다.

사족: 지난 해는 벼농사가 풍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울엄마 좋아하시는 도토리도 풍년이었습니다. 흔히 쌀농사가 풍년이면 도토리는 흉년이 든다고 하는데 이상하다고 하시더군요.
도토리 나무는 여름 내 산에서 묵묵히 논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흉년이 들 징조가 보이면, 스스로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사람들 멕이려구요...
울엄마한테 듣는 말 중에 가장 감명 깊게 듣는 자연 이야기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방식을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또한 자연(自然)으로 불리는 것일테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