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다녀왔던 하회마을입니다.
어떤 일이든 지나치게 거한 계획을 잡거나 지나치게 기대를 하거나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어대는 일이라는 게 늘 속 빈 강정처럼 폭삭 꺼지는 별볼일 없는 것이라고 믿는 터라 어떤 일이든 불쑥 시행하는 일에 느닷없이 기쁨이 도사리고 있지요.
저녁무렵 도착해 안동시내를 혼자 어슬렁거리다가 터미널 앞에 있는-가장 중심가였다- 모텔-여관??-에 들어가 하룻밤을 자고 아침 8시 40분 차로 하회 마을에 갔습니다. 아마 그날이 올 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날은 좋아서 햇빛은 투명한 공기를 뚫고 내리쬐었는데 몇시간 그늘도 없는 곳을 돌아다니다보니 다음날 아침 코끝이 발갛게 그을렸더군요.
뭐 여하간 어느 정도는 상업적으로 굴러가는 냄새도 났지만 그렇다고 그닥 혐오스럽게 그 냄새를 풍기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지요. 게다가 아침 일찍이라서인지 사람도 그닥 없었고 나는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썬그라스를 끼고 배낭을 메고는 혼자서 어슬렁어슬렁 골목길을 걸어다녔습니다.
하회마을 입구의 안내도... 그냥 기념으로... ㅋㅋ
이번에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하늘이 좋고 색이 좋고 고즈넉함이 좋다.
가로등이 좀 생뚱맞긴 하지만...
동네 뒷쪽에 누워 있던 푸르른 논. 결 좋고 색감 좋은 초록 융단 같다.
소원비는 나무가 있는 삼신당...
소원 많은 오애도!! 역시 소원 빌고 왓다. 무엇이든 간절히 빌어 원할 때 공짜는 아닌 거라 믿는 터라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는 모금함에 헌금-??-도 했다. 내 뒤에 왔던 사람들도 나를 보더니 각자 금일봉을... ㅋㅋ
골목 안에 음료수 파는 집 앞에서 박카스 한 병 사들고 그 옆 화단 돌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서애 유성룡 선생 고택의 내당으로 통하는 뒷문 앞이었다. 새롭게 소록소록 애정이 피어나는 검은 색 키플링 배낭... -쓰던 것을 지인으로보터 물려받았다.- 그리고 대학 옥수수라 불리던-대학교수가 발명 했단다. 파는 분의 말씀을 빌리자면...-옥수수 두 자루, 그리고 박카스
마을 뒷편에 땅콩밭... 주렁주렁 땅속에 매달여 있을 땅콩을 생각하면 괜히 즐겁다. 고구마나 감자도 그렇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심었다는 충효당 안의 구상나무...
익은 감도 떨어지고 땡감도 떨어진다... 삶과 죽음의 불가해한 섭리를 말하는 속담이 생각난다. 어느 순간부터 감나무 밑의 떨어진 감들을 보면....
불쑥 홀로 아무렇게나 피어있던 아주 작은 접시꽃 한 송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하회라는 이름이 붙었으므로 당연히 휘~~ 감기는 강 구경도 했다. 아무도 없는 나무 벤치에 한참을 앉았다가 누웠다가 했다. 점심 무렵에 꼬마들이며 학생들이며 우우 몰려와 시끄러워지기 전까지...
벤치에 앉아서 보이던 강 풍경.... 난 웅얼웅얼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어쩌구 노랠 부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부용대
역시나 홀로 고즈넉하게 어느집 텃밭가에 피어있던 도라지꽃. 저렇게 홀로 피었는 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을 보면 꼭 나 같다. 나와 닮아 있다...
봉선화는 늘 울밑에.... 울밑선 봉선화야~ 네모습이 처량하다... 하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고양이조차 한가한 풍경 속의 사물이다.
혼자 어슬렁거리는 여행은 언제나 '나'와 걷습니다. 온전히 '나'와 대화하며 속살거리고 개체화 된 '나'와 어깨를 곁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그건 마치 아주 맛있는 음식을 혼자서 먹고 있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욕심 사납게 아구아구 먹어대는 홀로 식사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들고 식탁을 차려서 음식이 갖고 있는 맛을 아름다운 맛을 기껍게 느끼고 감사해하며 먹는 식사... 당연히 내가 좋아하고 내가 맛있어 하는 음식이겠지요.
나는 그렇게 내 속에 살아 있는 또 다른 '나'와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족: 참으로 오랫만에 바닷가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여럿이 가는 여행은 또 왁자하고 거하게 차려놓은 상에 둘러앉아 먹는 음식같습니다. ^^;;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는....
다행이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서 하계휴양지로 잡아놓은 곳이라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덜 버글거렸지요. 무쟈게 여행운 좋은 오애도... ㅋㅋ. 폭죽 한 아름을 미리 인터넷 주문해온 준비성 좋은 친구들 덕분에 밤바다에서 어른들인 주제에 애들처럼 소리지르며 폭죽 터뜨리고 놀았습니다. 덕분에 형광등 불빛처럼 하얗게 빛나던 내 다리 아랫쪽에 발갛게 그을렸습니다. 한동안은 반바지 입고 양재천 걸어도 멍청한 모기들이 이제 다리에 덤벼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ㅋㅋㅋㅋㅋ
여름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겠지요. 나머지 여름 행복하십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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