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당장 오늘부터!!

오애도 2001. 12. 31. 18:24
자정이 넘었습니다.

나는 네 잔 째의 녹차를 우려냈습니다. 이러다 분명 밤을 새고 말 것입니다.

커피 두 잔에 녹차 네 잔에...

전엔 안 그랬는데 나이들어 늦게 커피나 차 마시면 잠자기가 어렵습니다. 가뜩이나 잠도 없

는데 말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서른 안쪽의 나이였을 때는 그래도 연말이 되면, 이 얼마 안 남은 꼬랑지 날짜가 지나고

새해가 오면, 뭔가 오늘 혹은 올해와는 다른 일들이 생겨날거라는 기대를 하곤 했었습니다.

올 해 못 한 다이어트나 여행이나 연애나 영어공부 같은 게 그저 막연히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참으로 쓸쓸한 일이지요.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사소한 기대나 설레임이 줄어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오늘 31일이 지나고 1일이 와도 태양이 그 태양이고

그날이 그날이라는 것을 빠삭하니 알고 있는 터에 새해에는 어쩌구 호들갑을 떤다는 것이

우스워진 것이지요.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새

날, 새 주일, 새 달, 새 해가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그것을 향해 중단 없이 전진해야만 한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날이 그 날, 같은 방식으로 살면서 무언가 새로 시작되는 날에는 저절로 달라지겠지 하

는 기대는 어쩌면 오늘을 대충 살겠다는 약은 계산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쉬운 예로 나는 다이어트 할 때 흔히 그런 핑계를 댑니다. 내일부터, 월요일부터, 혹은 1일부터....

사실 그 말은 오늘은 실컷 먹겠다는 자기합리화입니다.^^ 당연히 그 시작의 내일은 매우

오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자꾸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내일 또 그 다음 내일...

결국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지나갑니다.

새해부터는 담배를 끊겠다거나 술을 안 마시겠다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도 같은

맥락으로 오늘 혹은 지금은 원하는대로 하겠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그동안 새해엔 늘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하고 결심하는데 첫날이 쉬는 날인지라 뭘 하

기도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일부터......

그런 이유로 나는 얼마 전부터 여러가지를 시작했습니다. 늘 하는 다이어트도 그렇고^^;;

가계부 꼼꼼히 쓰기, 영어 테이프 듣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사실 이게 잘 안됩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상관 없는데 일찍 자는게 말입니다.- 사놓고 안 읽은 책 찾아 읽기, 울

아부지한테 시비 안걸기, 한문쓰기 등.

이렇게 시작하는 것을 시작하는 때-새해, 새달, 새주일- 로 미루지 않고 당장 해버리면, 적

어도 오늘을 대충, 함부로, 그냥저냥, 어영부영, 설렁설렁 보내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

다. 아직은 잘 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게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인지 아니면 게으른 며느리 해 넘어가면 바빠지는 것처럼 괜한 허둥거림인지 모르겠

군요.

그래도 잘 살았습니다.
그런대로 건강했고, 마음의 들끓음도 없었고, 지독하게 운이 없거나 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걸 통해 많은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됐으므로 지난해는 충분히 남는 장사를-??-한 것 같습니다.

해의 끝 날입니다.
그동안 여길 찾아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당장 오늘부터 좋은 날들이 이어지시길......
건강하시고, 돈도 많이 버시고, 혹 원하시면 애인도 만드시고, 역시 원하시면 결혼도 하시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건 행복하십시오.
제 하찮은 삶을 보석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님들에 대한 고마움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