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나는 더 이상 앓을 수 없을만큼 앓았다.
사람이 그렇게 심하게 몸이 떨리고 이빨이 부딪치고 살갗이 아프고 열이 날 수가 있는 것인가...... 약기운이 퍼지기까지 나는 이를 악물고 터져 나오는 신음과 덜덜거림을 참았다.
울 것 같았는데-너무 아파서-울지는 못했다. 그것도 너무 아파서... ㅋㅋ
죽기야 하겠는가!!
그때 하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침이 오기 전에 또 아프면 그것도 걱정이었다. 마지막 약이었으니까...
응급실로 가지 뭐 하고 버티다가 잠이 들었다. 밤 새 숫자놀이와 아이들 시험공부와 모래밭에서 동전 줍는 꿈을 꾸었다.
다행히 안 죽었다.
잘 일어나 찬 물 한 사발을 마시고 사과 한 개를 어석거리며 먹었다.
지난 일 년동안 어쩐 일인지 앓는 일 별로 없이 잘 지냈다고 입방정을 떨었더니 그게 한 번에 엑기스로 뭉쳤나보다.
오래 전 어느 드라마에서 어릴 때부터 한없이 사랑했던 여인이 떠나고 그날 밤 혼자 앓는 남자주인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렇게 앓는 모습을 본 여동생이 상대 여자를 만나 말했었다.
'난 울오빠 그렇게 앓는 걸 본 적이 없어...'
사람이 배신을 당해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었다.
그 남자주인공은 그리고 그 여자를 잊었던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질기게 악연으로 오랫동안 애증의 관계를 지속하다가 종국엔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나는 연인한테 배신당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간혹 이빨 딱딱 부딪치며 아플 때는 꼭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아니지, 이말은 틀리겠구나. 어찌 사랑의 상대가 반드시 사람뿐이겠는가...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좋게 말해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것들에 늘 뒤통수를 얻어맞는 나는 허구헌날 배신을 당하는 것 아니겠는가?? ^^;;. -이것도 옳은 진술은 아니네. 나는 별로 배신당하고 산 적은 없으니까...... -
다만 나는 '혼자' 앓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렇게 아픈 걸 본 적이 없어'라고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아프기 전에 약국에서 약이나 사다 놔야겠다.
설마 몸살이라는 게 사흘 연속 이어질리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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