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그친 모양이다.
제법 추적거리는 빗속을 수업 끝나고 한 시간 넘게 걸어왔다.
아직 덜 노래진 은행잎이 떨어졌고 종종 보이는 은행들을 비닐 봉투에 주워 담았다. 제법 쌀쌀한 것이 가을 정취가 물씬이다.
그렇게 은행을-Bank- 지나고 어린이용 가구점을 지나고 호텔을 지나고 케이 에프 씨도-젊은 남자가 창가 쪽에 홀로 앉아서 치킨 버거를 소담스럽게 먹고 있었다- 지나고, 전철역도 지나고 김밥집도 지났다. 당연히 일요일이라서 사람 없는 고즈넉한 길이다.
주머니에 돈은 두둑해서리-??-오는 길에 있는 맛있는 더큰집 설렁탕집의 설렁탕을 먹을 수도 있고, 케이 에프 씨의 치킨도 세 쪽씩이나 먹을 수 있다. 던킨 도우넛 앞에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는데 창가쪽으로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연인들을 보면서 문득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물론 던킨 도우넛가게의 커피는 너무 진하다. 분명 불면의 밤을 가져올 게 뻔하다-김밥집에 들러 천원짜리 김밥이랑 잔치국수를 먹어도 좋겟지만 나는 압구정동 광림교회 앞에서 막 뽑아온 듯한 칼국수 한 팩을 사들고 들어왔다. 호박을 듬뿍 넣고 끓여 먹어야지...
물론 집에 와서 멸치 한 줌을 넣고 조선 간장과 엊그제 청계산 밑에서 사 온 호박 듬뿍 넣고 끓여 후룩거리며 먹었다. 비오는 날, 칼국수.... 좋다. ^0^
먹는 일이 때워야 할 끼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사치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왕성한 식욕에의 축복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
칼국수 먹고 침대에 뒹굴거리며 다큐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띠리리링..
뭐하냐?
찌그러져 있으...
수업 늦게 끝나지? 일찍 시작해서 좀 일찍 끝낼 수 없냐? 맛있는거 사줄께...
글씨... 안될걸. ㅋㅋ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내려 시도는 했지만 뜻대로 안됐다.
저녁 수업은 아직 멀었고 나는 어슬렁거리며 다림질을 하거나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했다.
방바닥이 제법 차다. 보일러를 잠시 돌려야겟다.
그렇게 여유롭고 한가하고 느릿느릿하게 일요일 오후가 가고 있다.
늙으면 하루가 길고 일년이 짧게 느껴지며, 어릴 때는 하루가 짧고 일 년이 길게 느껴진단다. 이렇게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는 건 내가 늙었다는 얘기인가?? 후후
그렇긴 해도, 그렇게 기인 하루 중 어느 한 순간도 따분하거나 권태롭게 느껴진 적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좋은 일요일!!
아직 남아 있는 시간도 길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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