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햇빛 그리운 날에...

오애도 2001. 7. 23. 02:56
살인적으로 더운 날이었습니다. 조금만 꼼지락거려도 땀이 줄줄 나더만요.
어찌나 더운지 과부 땡빚을 얻어서라도 에어컨을 사?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째 물기와 습기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외출하려고 하는데 친구로부터 메세지가 왔습니다.
아기 낳았다고... 자연 분만 하겠다고 노래를 불렀던 친구는 열 한시간을 진통하고 결국엔 제왕 절개를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무덥고 습기찬데 새생명을 이 세상에 내어놓고, 아픈 몸으로 누워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아이를 얻은 기쁨과 경이로움이 먼저일까, 아니면 더부룩한 배와 생살 찢은 아픔이 먼저일까...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일반적으로 신비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처음 낳은 당사자는 그것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롭고 충격적인 경험일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상상만요. 느낄 수는 없겠죠-
한때 여러 사람들에게서 -그것도 대부분 나이어린 친구-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어른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인지도 모르지요. 적어도 한가지 면에서는 그들은 나와 다른 경험을 한 것입니다. -뭐 그렇다고 아이 낳은 사람이 모두 나보다 존경스럽고 어른스럽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자,그런데 아이나 결혼이나 아직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이긴 하지만 너무 흔하게 봐서 미지의 세계가 가져야 하는 환상은 없습니다.
다만 예측도 짐작도 할 수 없는 분명 뭔가는 다른 본능같은게 있으리라는 생각은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실재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지요.
우리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부모님 모두 그렇게 아이를 낳고, 키우셨겠지요.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짐작해 봅니다.
내가 시집가서 아일 낳아보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식 생각으로 등줄기가 아리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까요?
그리고 그것이 행복의 색깔인지 불행의 색깔인지 구분할 수 있을런지...궁금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너무 아까와서 쓰지 못하고 꼭꼭 숨겨둔 귀한 물건처럼 나를 설레게 합니다.
언젠간 꺼내서 써야지...
그런 날이 올까요?
한 번 꺼내 버리면 그것은 더이상 미지의 세계도 그로 인한 설레임도 없을텐데...
아이 낳은 친구의 전화받고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햇빛이 그립군요. 아이 낳고 햇빛 반짝이는 바깥 풍경의 경이로움을 얘기했던 친구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