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영화 이야기... 세번째... 순수한 관객이 필요한시대

오애도 2001. 7. 16. 23:24

오래 전에 쓴 것입니다. 가끔 영화에 가졌던 애정이 어딜 갔는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영화는 오래된 나의 연인입니다.
추석에 고향엘 다녀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고향 마을로 들어가기 전 농협 앞 마당이 덩그러니 눈에 띠었습니다. 어릴 적 천막 극장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지요. 나는 거기서 단돈 10원 혹은 20원을 내고 그 무슨 정체 불명의 중국 영화였는지 어설픈 한국 영화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천마산의 결투`나 가수 남진씨가 주연을 했던 `어머님 전상서`같은 신파조 계몽 영화같은 걸 봤던 것이 기억났지요.

날아다니던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실컷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움직이는 화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던 시대에 영화는 내용이 무엇이든 환상 그 자체였으니까요. 그리고 가끔은 10원씩 내고 학교에서 단체로 김일 주연의 프로 레슬링 영화나 반공 사상 주입이 목적이었던 전쟁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지요. 애국가가 나오면 모두들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숙연해졌고, 마지막 김일 선수가 박치기로 적을 물리칠 때는 기립박수까지 쳤던 걸 기억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런 신파조의 영화나 최루성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의 어머니들이 소리없이 울거나 나쁜 계모나 첩들이 나오면 같이 흥분해 욕을 하거나 혀를 끌끌 차거나 하는 모습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사는게 여유로워졌습니다. 시골 생활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시골 아줌마들은 이제 영화를 보러 가지 않습니다. 대신 텔레비젼을 봅니다. 그리고 아무도 신파조의 영화나 계모에게 혹독하게 구박을 당하는 어린 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동시대의 사람들 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영악해 영화를 순수하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와 더이상 움직이는 화면이 환상이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이시대에 순수하게 영화 속에서 나오는 희로애락에 몰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분석과 비평과 가치-예술적-를 논하지요.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관객의 눈은 점점 칼날이 되 가는데 영화를 만드는 환경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까요.스필버그의 오락영화를 단지 오락영화일 뿐이라고 비난하고 상업적이라고 격하시키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씁쓸한 자조로 되돌아 옵니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카메라 워크나 화면 구성이나 거창한 주제나 상징성 따위를 몰라도 순수하게 영화를 보고 울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많았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멜로드라마건 싸구려 신파조의 영화건 많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영화관이 터져 나갈듯이 관객들이 밀려들면 좋겠습니다.
 기껏해야 헐리우드 블록 버스터영화들 보러 몰려오는 것만 봐야 한다니요......
드라마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합니다. 비극의 시대가 있는가 하면 풍자의 시대 혹은 멜로드라마의 시대, 아니면 코메디(희극)의 시대가 있다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지금은 무슨 시대인지......모든 것이 뒤 섞여져 있는 카오스?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앞세대를 겨냥한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는지...
누가 뭐라든 그때는 영화가 환상이었고 그걸 순수하게 믿어 준 소박한 관객들이었고 어쩌면 지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순수한 관객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지......

고향 다녀오는 길에 떠오른 두서 없는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