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왕의 여자이고 싶었을까? -영화 '왕의 남자'-

오애도 2006. 2. 19. 00:30

 

영화 '왕의 남자' 보다.

어떤 이유에서건 가진 것보다 더,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거둬들이는 것들이 있다.

영화 '왕의 남자'가 그랬다.

캐릭터의 독특함이나 다분히 터부시 됐던 소재, 그리고 배우의 그로데스크하리만치 비쥬얼한 외모가 주는 효과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듯 보인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배경이나 설정 자체가 퓨전이었고 이미 영화의 사실성이나 현실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닌듯 보인다.

지극히 페미니스트적인 감독의 시선이 느껴지며-공길의 여성성은 곧 강인함이며 그것은 종종 가장 위급한 순간에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연산의 광기의 원천이 모성애의 결핍이고 파더 컴플렉스에 의해 그것은 발현되는 것으로도 드러난다. 공길은 그러한 연산에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낀다. 왕의 여자, 즉 어머니이고 싶었을까?- 연기 혹은 극-drama- 대한 애정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연극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종종 연극 속에서도 이루어지잖은가. 햄릿의 희곡에도 아버지의 살인자는 햄릿이 꾸민 연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범죄를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도 대본 없는 라이브퍼포먼스라고 한다면 사람들도 당연히 타인의 삶에 비추어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늘 자신만 들여다본다. 자신 밖에는 볼 줄 모른다.

 

한 시대의 언로가 패러디와 새타이어로만 소통된다면 그것은 답답하게 막힌 사회가 분명하다.

그 막힌 사회의 원흉처럼 보였던 연산이 스스로 풍자의 한가운데 들어가 배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인간' 연산의 쓸쓸함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종종 이야기는 비약적으로 뛰고, 그 중간중간은 엉성하여 촘촘하게 짜야 할 뜨개 목도리가 울퉁불퉁 숭숭 구멍이 뚫려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들을 보이지 않고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배우 이준기의 화려함-??-으로 짜여진 무늬이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이준기다. 따라서 이것은 이준기의 영화가 되어 버렸다. 십대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다.

뭐가 재밌냐?

이준기가 멋있어요~~~

 

그렇지... 그것을 멋있다고 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가 주는 비쥬얼의 효과가 얼마나 강한지 그의 서툰 연기조차 연기로 느껴질 지경이다.

 

어쨌거나 영화는 대중성이 그 첫번째 속성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사로잡았다면 영화는 잘 만들었다고 박수쳐 줄 밖에....

 

 

 

며칠 째 분주하게 보냈더니 목이 맛이 가려는 모양이다.

수업 많은 토요일이었고, 헬스클럽 운동한지 사흘 째고, 친구들과의 모임도 있었고, 손님도 왔었고, 술도 마셨고, 달거리도 있었고, 수업은 뒤죽박죽 되어서 나쁜 머리로 그걸 다 정리하느라 머리카락 빠질 지경이다. 귀는 덧나서 근질거리고 입안은 헐었다. 그동안 수학문제도 열심히 풀었다. 목은 칼칼하고 눈은 뻑뻑하다.

몸은 바빴지만 맴은 가볍다.

 

봄이 오믄 연분홍색 가디건이나 하나 사 입을 생각이다.

허리 싸이즈 안 줄어서 바지는 딱 세 벌로 버티고 있지만 말이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