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내 마음의 추석!!

오애도 2005. 9. 16. 22:59

엊그제 말간 하늘에 다 차지 않은 8월의 달을 보셨는지요.

추석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거리는 며칠 전부터 대목의 설렘과 붐빔이 떠 다녔습니다. 그 기운은 이렇게 홀로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쭈그리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홀로 사는 여인네의 고즈넉한 집안에도 흘러들어온 게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조바심을 느끼게 하는 걸 보면 말이지요.

사람의 기- 氣-라는 것은 놀라워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이거나 같은 마음을 먹으면 보이지 않는 공기속의 입자의 배열을 바꿔 놓는 모양입니다.  안 그러면 이렇게 추석이나 설날 전 후, 일요일이나 토요일의 공기를 체감할 땐 그리 섬세하게 질감이 다를 리 없을테니까요.

 

오늘은 사실 일찍 일어나 명절맞이용-?- 머리파마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어릴 때 명절이 다가오면 울엄니는 한 사흘 전 쯤 줄줄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발소에 가서 머릴 깎게 하셨습니다. 어른용 이발의자에 커다란 송판을 척!! 올려놓고 거기에 덜렁 올라가 앞머리는 정확하게 일직선, 옆머리는 앞머리와 직각을 이루는 60년대식 단발머리를 깎았더랬습니다. 마지막에 이발사는  조그만 컵에다 따뜻한 물을 붓고 푸쿠푸쿠 비누로 잔 거품을 내어 솔에다 묻힌 다음 목덜미에다 슬슬 칠하고는 쓱쓱 면도용 칼을 가죽-맞나?-에다 문지른 다음 사각사각 잔털을 밀어줬습니다. 그 사각사각 하고 면도날이 뒷목을 지나갈 때마다 옆구리 쯤이 간지러웠는데 아주 느낌은 재미있었지요.

그렇게 다 깎고 나서 뒷목을 만져보면 까칠까칠한 것이 아주 특이한 감촉이어서 그날 하루는 자주 뒷덜미를 손으로 훑어보고는 했습니다. 물론 자고 일어나면 그 새 머리가 길어서 그 느낌은 사라져 버리지만요.

 

추석빔이 있던 추석은 참 행복한 날입니다. 사정이 어려울 땐 그저 새 양말 한 켤레로 끝나버리기도하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던 옷 중에 가장 나은 것을 깨끗이 빨아 입고는 새 양말을 신고 새로 깎은 머리 때문에 조금은 어색한 몰골을 비춰보는 것입니다. 물론 씰데 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설친다고 엄니한테 지청구를 먹습니다. ^^;;

 

그래도 가끔 색깔 좋은 스웨터나 티셔츠 같은 게 추석빔일 때는 그걸 사다 장롱에 넣어 놓고-보통 대목장이라고 불리는 명절 전 마지막 장날에 산다- 장롱을 아루에도 몇번씩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입어보고 만져보고 햇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추석 전에 미리 입으면 무슨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미리 입고 다닐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여 그렇게 새 옷이 있는 명절이면 그야말로 새벽에 일어나 세수도 곱게 하고 왔다갔다 부산을 떠는 것입니다.

 

나이 사십이 넘은 나는 지금도 그 날들을 생각하면 아련하게 맘이 저릿저릿합니다.

그러고 보니 난 지금도 새 옷을 사오면 당장 그 날 입거나 다음날 바로 입지 않고 그저 걸어놓고 며칠이 지난 후에 입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버릇이 혹 어릴 적 추석빔이나 설빔에 대한  향수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들었습니다. ^^;;

 

아까 일 끝나고 오면서 잠깐 옷가게에 들렀습니다.

색깔 고운 맨투맨 티라도 고를까 싶었는데 별로 맘에 들지 않아 그냥 왔지요.

하여 내일은 아침 일찍 백화점에라도 나가볼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내 손으로이긴 하지만  모처럼 추석빔을 사 입어볼 생각입니다.

새로 산 면 티셔츠에서 나는 새 것 냄새는 묘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꼬실꼬실한 새 섬유 촉감이나 늘어지지 않은 손목의 시보리-??-가 죄는 손목의 느낌도 좋구요.

 

어쨌든 명절 전 후의 공기 느낌이 다른 것은 아마 이렇게 각자가 품고 있는 추억이라는 색깔이 시즌 만난 유행옷처럼 불쑥 뛰쳐나와 섞여 있기 때문일런지 모릅니다.

 

하여 즐거운 명절 보내십셔~~

보름달 뜨면 달구경도 자알 하시구여. 나머지 올 해의 날들이 그렇게 둥글게 차오르길 빌겠습니다.

행복하십셔~~~

 

 

사족:: 아침 내 장문의 글을 썼다가 세 번이나 날렸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한들 그 긴 글을 다 기억해서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대충 내용이 이 정도였을 것입니다.

         아마 좀 더 길었지 않나 싶은데 글이라는 게 다분히 즉흥적인 요소가 많고 낮이냐 밤이냐  

         에 따라 쓰는 마음의 자세가 달라지는 터라 어딘가 좀 엉성한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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