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9월 끝날에...

오애도 2002. 9. 30. 09:32
요즈음은 좋은 날씨에 발 맞추어 매일 밤마다 양재천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뭐 운동도 할 겸, 머릿속도 비울 겸, 바람도 맞을 겸... 그야말로 겸사겸사입니다.
열 한시 쯤 집을 나서면 거리는 한산하고 고즈넉합니다. 그렇게 두 시간쯤을 걷고 돌아와서
는 쿨쿨 자는 것이지요.
역시나 엊저녁에도 다 늦게 산책을 하러 나섰는데 툭툭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골목을 나서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사거리 모퉁이를 지나 아파트단지 옆을 지나는데, 투둑
거리며 오는 비는 별로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발걸음
을 돌려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가끔 이렇게 예정, 혹은 계획을 쉽게 바꿀 수 있는 내 맘대로의 자유에는 뭐랄까 뭐라 설명
할 수 없는 묘한 감흥이 있습니다. 하다가 말거나 해도 누구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어쨋거나 그렇게 터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생각보다 몸이 무거워 안 가길 잘했다는 생
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드러난 목에 닿는 바람이 제법 썬썬했습니다.

그제부터 달거리통-??-에 시달렸는데 어제까지 진통제를 삼켜도 전혀 나아지는 기색이 없
었습니다.
학생 가르치러 가서 열심히 청산별곡과 어부사시사를 설명하는데 머리 속부터 식은땀이 솔
솔 솟아나고 다리가 후둘거리는데다, 속까지 더부룩한 것이 참으로 괴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결국 수업시간도 다 못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어제는 선뜻거리는 몸과 배고픔-다이어트 중-, 기운없음, 덱덱거림-시험보충-, 가을
날 특유의 스산함까지 합쳐 정신없는 하루였습니다.
어쨋거나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쯤 원초적이지만 드러내놓고 아파할 수도 없는 병-?-에 시
달리다 보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에 짜증이 확 일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 늦게 우울하다며 친구로부터 술 한 잔 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여차저차 해서 못나간다고 했더니 대뜸 산부인과를 가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없던 증세들이 갑자기 생기거나 심해지면 분명 부인과질병의 징후라는 것이었습니
다.
"그랬다가 내가 자궁수술 받았잖어..."-참고로 이 친구는 서른 넘긴 노처녀입니다-

병원이라고는 팔이 부러지거나 해서 물리적으로 내 힘으로 안되는 것이 아니고는 전혀 가기
를 즐겨하지 않는 터라-하긴 병원가는 걸 즐기는 사람은 없겠지만^^;;- 뭐 까짓 생리통쯤로
병원-그것도 산부인과를...-가랴 하고 생각하는데 이 친구 왈, 우리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하는 일-??-을 안 해서 그런 산부인과 질환이 잘 생긴다구...호르몬
이상 같은 걸루 말이야...
역시 경험은 중요한 것!!
하긴, 누가 뭐라든 우리같은 신분은 너무 오랫동안을 자연을 거부하고 사는 것만은 확실하
니까 뭐 부자연스러운 병이 생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렇다고 병 안 나기 위해 자연에 순응-?-하며 살기 역시 만만찮으니 이래저래 힘든 삶입
니다.

에고.....이런거 저런거 다 귀찮은 걸요.
낮에 들여다봤던 청산별곡이나 어부사시사에서처럼 에라, 멀위랑 다래랑 먹으며 청산
에 가 살거나, 아니면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쩌구 하면서 괴기나 잡아서 먹고 살거나 그
저 물고기가 되어서 살았으면 세상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구월의 끝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