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10년 전에 썼던 글입니다.
요새 한가한 날이 많아서인지 자꾸자꾸 청계산엘 가고 싶어집니다. 조용하고 한가한 산길을 땀 뻘뻘 흘리며 오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자꾸자꾸 한가한 시골에 내려가 푸성귀 가꾸며 흙 만지며 살고 싶다는 생각.
지금까지 귀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
그리고 문득문득 너무나 자주 엄니 생각이 나는 요즘입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희고 숲은 푸르고...-두보의 시구하고 비슷하네...-
완벽하게 서술이 맞아 떨어지는 날...
14년만에 가시거리가 최고였다는 어제....
길은 저렇게 좌우로 굽고....
굽었으되 비틀리지도 비꼬이지도 않은....
그늘조차 푸른색...이었다.
나는 그날... 수학책과 바느질거리와 뜨개질거리를 배낭에 넣고 모자를 쓰고...
샌드위치와 컵라면을 먹어가며 뜨개질을 한시간 넘게 하고, 수학문제를...
저곳에서 풀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좋은 날에 혹은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날에 산엘 오르지 않은 것은 죄악이야~~
홀로 너스레를 떨어가며 저녁 어스름 산에 올랐다.
날아갈 듯 몸은 얼마나 가벼운지!!!
사람 하나 없는 입구를 지나고-누가 청계산을 도떼기시장이라 하는가!!-
흐르는 물과 인사를 하고
이마에 손 얹고 바라보던 서녘 햇살도 찍고
그렇게 사람 없는 산길을 혼자 걸었다.
혼자 저렇게 위를 향해 걷지만...
문득 뒤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보는 걸 자주하고 좋아한다.
길에도 뒷모습이 있다.
내려오면서 보는 뒷모습의 산길과 오르면서 보는 앞모습의 산길은 느낌이 다르다.
다른 이들은 살면서 무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을 얼마나 자주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하늘 올려다보길 좋아할 뿐이다. 걸을 땐 분명 땅을 보고 걷는데 문득 서서 하늘 올려다 보고 있는 나를 종종 깨닫는다. 혼자 걷는 산길에서, 혼자 걷는 도시 한 복판의 대로변에서 내 고향집으로 가는 들길에서...
산길에서 보는 하늘은 저렇게 장식적이고, 대로변에서 보는 하늘은 직선으로 조각나 있고 고향마을 어귀에서 보는 하늘은 넓고 둥글다.
거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은 낮은 산길에서 만나는 하늘이 내 삶의 지향점이고, 직선으로 테를 두른 좁다란 하늘이 내 삶의 현재 모습이라면 넓고 둥그런 고향의 하늘은 이젠 돌아갈 수 없는 내 어린 시절이리라...
어느 날 삶의 정점에서 내려가는 날이 올 것이고...
그때는 저렇게 위에서 흘러...
아래로 아래로 겸손하게 고개 숙여 내려갔으면 좋겠다.
인간 본연의 삶이라는게
높고 거만한 천상의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낮고 겸손하되 아름다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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