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쓰기 시작하고 며칠 안 되어서 썼던 글입니다.
요즘 엄니가 치아 치료 중입니다. 오래 전부터 틀니였던 엄니의 치아는 한참 전부터 문제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일로 치료가 늦어진 것이지요. 윗니를 전체 틀니로 바꾸느라 하나 남은 치아 빼고 지금은 그야말로 호물호물 합죽이 할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엄니 오신 이래로 같이 밥 먹을 때마다 어렵고 힘들게 그저 물렁한 음식 위주로 식사하는 엄니 옆에서 나는 이것저것 후루룩 쩝쩝 후딱 먹어치우면서 문득문득 목밑이 턱턱 막혀오는 것을 참습니다.
삭아가고 닳아지는 자연의 일부인 물리적인 몸과 역시 함께 무너지고 무뎌지는 정신이라는 보이지않는 시스템이 쓸쓸하고 쓸쓸하고 쓸쓸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문득 돌아봅니다. 영원한 것 따위는 없는데 모두들 한없이 무겁고 두껍게 일상의 고뇌와 드잡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001년 5월 20일
즐겨 읽는 하루키의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자면
'그래서 그 별장식 호텔의 침대 위에서, 나는 이제 청년기를 벗어나서 이미 체력적인 퇴조의 길로 접어든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젊었지만 그늘 하나 없는 젊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며칠 전 단골 치과의사가 지적해 준 것이다. '이에 대해서 말하면 이제부터는 닳고 흔들리고 빠져가는 과정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그 의사가 말했다.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조금씩 저지하는 것입니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늦출 수 밖에"
-후략-
참으로 슬픈 일은 말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절대로 거부할 수도 막을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커다란 징후들을 읽어낼 때입니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과 그것과 비례해서 닳고 흔들리고 빠져나가는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눈, 맑은 정신, 순수한 마음, 건강한 몸...그것은 단지 이빨로 대표되는 사소한 징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곧 우리의 인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몇 개의 이가 시큰거리고 아픕니다
그러나 나는 치과엘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치과병원에 갖고 있는 원시적인 공포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갈아엎어야 할 이빨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세월의 길이와 깊이에 대한 쓸쓸한 자각때문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혀보다 250배 쯤은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빨은 혀에 비해 형편없이 일찍 그 최후를 드러내는 것인지 ...
불혹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있는데, 미혹만 자꾸 늘어납니다.
어쨌거나 '이를 소중히 해야 한다네.'
영화 '마라톤 맨'이던가요? 로렌스 올리비에 경이 맡은 악당 치과 의사가 잔인하게 더스틴 호프만을 고문하면서 하는 대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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