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한가하고 한가한 주말입니다. 어제는 화장실 청소를 싹싹 반짝반짝 손님이라도 맞을 것처럼 했습니다. 빨래도 깨끗이 해서 널고 시래기도 삶아서 정성스럽게 껍질 까 놨다가 오늘 된장과 돼지고기 앞다릿살과 들기름을 넣고 자박자박 끓였고요.
시래기를 손질하는데,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묵나물들은 맛이 없어지는겨... 하시던 울 엄니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겨울에 사놨던 건데 소 여물 끓이는 냄새가!! ㅋ
한참 전에 친구가 준 쭈(주)꾸미를 해동해 삼겹살 넣고 청양고추와 고춧가루와 고추장 넣고 쭈삼 볶음도 만들었습니다. 점심에 소면 삶아서 탄수화물 신경 안 쓰고 호로록 거리며 먹었지요.
날씨는 초여름...
탁상용 선풍기를 꺼내 틀어놓고 나머지 시간들은 책상 앞에서 죽어라~ 책 보기...는 헛소리고 설렁설렁 공부 중입니다.
꼬박꼬박 가계부도 쓰는데 보아하니 엥겔 계수 80%가 넘습니다. 웬일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에 갑자기 꽂혔습니다. 허허.
요즘 키위가 맛있어서 한 보따리 사다가 시도 때도 없이 먹습니다. 참외도 맛있어서 한보따리 사다 먹었고 끝물 딸기도 두팩씩 사다가 하루에 한 팩씩 먹어 치웁니다.
사실 저탄고지에서 과일은 안 먹는 게 좋지만 참느라 스트레스 받느니 뭐 몸이 당길 때 적당히 먹어주면 행복호르몬 팍팍 올라서 몸에는 더 좋지 않을까...ㅋ 견강부회입니다. 누가 뭐라든 세상에 제일 나쁜 게 스트레스지요.
어쨌거나 험한 세상에 나라 걱정 말고는 다른 스트레스 1도 없는 요즘입니다.
문득, 나라에서는 마스크를 어떻게 벗기고 또한 벗을 것인가...너무 높이 올라간 마스크 쓰기에 대해 마스크 벗기의 연착륙 뭐 이런 고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웬 뜬금포?-
요즘 케이블 채널에서 600만불의 사나이, 원더우먼, 형사 콜롬보, 에어 울프 같은 옛날 TV시리즈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면 열 네살 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의 시간들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무려 40년 전입니다.
사실 어떤 것들은 그 당시에도 재방에 재방도 보고 AFKN 방송을 통해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었지요. 하여 지금도 어떤 대사들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나기도 합니다. 물론 그 당시엔 더빙이어서 성우 양지운 씨나 고 최응찬 씨 목소리가 훨씬 익숙해서 나중에 자막 방송했을 때는 오히려 배우 원래 목소리가 낯설어서 당황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분명 원어로는 러시아인데 더빙판에서는 적성국으로 나와서 뭐야? 소련 눈치 보는 거여? 어쩌구 생각했던 기억도 나고요. 첨예한 냉전시대여서 내용엔 미국과 소련의 비밀스러운 작전 같은 얘기가 많이 나왔었지요.
그리고 문득 채널 돌리다 최근 시리즈인 CSI가 걸리면 그것도 봅니다. 사실 CSI는 한때 열광했다가 어느 순간 지나치게 고어적인 화면에 진저리가 나서 보기를 그만뒀지요.
그 CSI 화면에 비하면 이전의 시리즈들이 얼마나 소박하고 정감 있는 화면인지 극명한 대비가 느껴집니다.
그런 옛날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렸고 풋풋했고 희망 가득했던 열네 살에서 스무 살 무렵의 '나'를 떠올립니다. 엄니 아부지가 살아계셨고 뭐든 열심히 하면 자알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신문도 책도 라디오도 티비도 탐욕스럽게 흡입했던 날들이기도 했었지요. 열심히 공부해 철학도가 되고 싶었고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었고 88올림픽에 자원봉사 같은 걸 하겠다고 TV로 영어도 중국어도 일본어도 스페인어도 배우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 물론 자원봉사도 못했고 배우긴 했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말도 없음 ^^;;-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삶의 뒷부분이 훨씬 짧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미래를 생각하면 늘, 어떻게... 자알... 문제 없이... 힘들지 않게 갈 것인가... 가 먼저 떠오릅니다. 흠...
물론 1도 우울하진 않습니다. 사소한 걱정이나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어쩌면 크게 잃을 게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을 게 없다면 역설적으로 얻을 것만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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