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버이날 하루 전...
엄니 아부지 계시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3월 아부지 기일에 내려갔다가 시간이 늦어 그만 헛걸음을 했었던 터였습니다.
전날 미리 고속버스표 예매를 하고 계란도 삶고 여분의 핸드폰 배터리 충전도 빵빵하게 하고 -산속이라 배터리 닳는 속도가 LTE급-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항암제 복용 중인지라 반드시 밥을...-혹시 몰라 저녁약도 챙기고 선글라스도 부채도 손수건도 이온음료까지 챙겨 넣었습니다.
터미널 가는 도중에 늘 하듯이 카네이션 네 송이-할머니 할아버지. 엄니 아부지-샀습니다.
중간에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도착 시간이 좀 늦었지만 다행이 하루에 네 번 밖에 없는 시내버스도 아슬아슬하게 무사히 탔습니다. -그 다음 버스는 네 시간 후에 옴. 늘 놓쳐서 택시를 탔었음 - 가까운 데 사는 오라버니 집에서는 승용차로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가 시내를 지나고 제법 깊은 산골스러운 동네도 지나 한시간 가까이 걸려 텅 빈 정류장에 내려 놓았습니다.
엄니 아부지, 저 왔어유~ 인사를 하고 로비에 꽃을 내려 놓고 나왔습니다.
어버이날 전날인지라 로비 화단-??-이 카네이션으로 가득했습니다.
시내로 나오는 버스는 4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해서 터덜터덜 올라와 저렇게 한가한 버스 정류장에 앉았습니다. 날씨는 보기 드물게 청명했고 바람도 서늘서늘했지요. 앞에 보이는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노랑에 가까운 연두색과 담록색으로 얼룩얼룩했습니다.
시간은 많았고 서둘러 돌아갈 이유도 없었으며 가방엔 삶은 달걀이랑 이온 음료도 있었습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산들을 바라보다가 삶은 달걀을 두 개 까먹고 이온음료를 마셔가며 버스를 기다린다는 생각도 없이 햇빛을 받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은 온전히 내것이어서, 죽은 자들로 가득찬 곳이지만 씻어 놓은 듯 맑은 풍경 속에서 그렇게 나와 함께 느릿느릿 평화롭게 지나갔습니다.
뭐 이렇게 세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버스 오면 타지... 하는데 기적처럼 빈 택시가 지나가는 바람에 잡아 탔습니다. 하하하
그리고는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엄니 아부지를 본 시간은 겨우 5분 남짓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5분의 시간을 위해 마음을 준비하고 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야말로 그곳을 가는 진정한 '목적'이었고 의미였을 것입니다.
삶도 어쩌면 짧지만 중요한 순간을 위한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일 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일들로 가득한 매일매일이 이어지고 순간순간이 지나가고...
그리고 어느 순간 비로소 끝에 다다르겠지요.
그 과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사람들은 지나고 나서야 겨우 깨닫게 됩니다.
하여, 목적이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목적이었던, 온 시간이 꽉꽉 채워져 '내것'이었던 5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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