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중심정맥관-히크만 카테터-하고도 잘 지내는...

오애도 2018. 1. 17. 12:50

어제 병원 가는 날.

다음 주 3차 공고를 앞두고 외래진료는 없고 히크만 카테터 소독하러...


저렇게 심장 가까운 중심정맥에다 관을 꽂아 놓고 항암제를 투여하거나 수혈을 하거나 채혈 등을 하는 것이다. 밖으로 관이 나와 있는데 다시 그 끝은 두 개 혹은 세 개의 갈라진 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출구 쪽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정기적으로 주변 소독을 해야 하고 또 관에 고여 있는 혈액이 응고되지 않게 헤파린용액도 정기적으로 투여해야 한다. 주사기며 헤파린이며 사다가 직접 해도 되는데 왠지 그것은 혼자 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쓸쓸하게 주사기로 약물 넣는 그림이 영 상상으로도 별로였기 때문이고 뭔가 오랫동안 앓아야 하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그림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ㅋㅋ

퇴원하고 초기에 넓게 밴드 붙인 주변 피부에 물집이 잡히고 쓰려서 소독하러 가는 날, 넓은 테가덤 방수 밴드를 떼어내고 입구만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갔다가 간호사한테 장난스럽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었다. 자기 간호사 생활에 이렇게 하고 나타난 환자는 처음이라고... 관이 심장 쪽에 가까운 곳에 꽂아 놓은 것이라 감염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당연히 나는 무식한 짓을 했으니 등짝을 한 대 맞고도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ㅋㅋ


어쨌거나 보거나 상상만으로는 끔찍한-??- 모습인데 의외로 굉장히 편리하다. 백혈병은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매일 아침마다 다량의 채혈을 하는데 그때마다 주사기를 찔러댄다면 정말 으악!!!이다. 

그리고 항암제가 워낙 독해서리 일반 정맥주사로 놓을 때 혈관 밖으로 약이 새어 나가서 염증이나 혈관 손상을 입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마다 간호사가 스윽 들어와 가슴을 헤치고 세 통의 피를-어느 땐 다섯 통- 뽑아가는데 종종 언제 뽑아가는지도 모를 만큼 아무 느낌이 없다. 

게다가 나는 혈관이 워낙 얇아서 예전에 입원했을 때 링거를 거의 매일 새로 꽂아야 했고 꽂을 때마다 여러번 찔러야 간신히 혈관을 잡았었다. 혈소판 수치 낮을 때는 온 팔이 퍼렇게 멍으로 채색되기도...


샤워할 때 많이 불편해서 핑곗김에 사워를 자주 안 하게 되는 더러운 인간-??-이 되고 있다.ㅋㅋ. 비닐 팩으로 꽁꽁 싸맨 다음 다시 종이 테이프로 가슴에 도배하듯 붙이는 대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  


어쨌거나 참 고마운 세상이다.

조만간 집중치료 끝나면 중심정맥관하고도 안녕을 하게 될 것이다. 설마... 유지치료 2년동안 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 ㄷㄷ


하여 잔뜩 싸매고 마스크를 쓰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전철을 타고 다녀왔다. 뭐 항암 후유증으로 다리는 좀 무겁지만 난 하나도 안 아픈 사람 같다.

사실 아프고 나서 모자와 마스크를 꼭 쓰고 다니는데 이게 참 묘한 감흥이 있다. 눈만 내놓은 상태로 웅얼웅얼 입술로만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가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이거나 발끝을 토닥이기도 한다는...  

내가 뭐 연예인은 아니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그들이 왜 마스크에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는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 많은 데서 나만의 작은 공간에 숨어다니는 느낌?? 인데 참 별 경험을 다 해 본다. 

어릴 때 구석진 곳에서 혼자 놀 때의 감흥 같은 것...


어찌하여 나는 혼자여도 심심하지 않은가. 중심정맥관하고 잘 노는 나. 팔자일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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