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오신 지 일 주일이 지났다.
이것저것 많이 좋아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 자알 드시고 많이 밝아지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식들이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거의 무반응이셨던 엄니는 오늘 아침 내가 열이 나자 우리 딸 아파서 큰일났네... 하셨다. 개그콘서트가 재밌다고도 하시고 골목길 돌며 담 밑에 자라는 풀들의 이름을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계셔서 인사하듯 말씀하신다는...
가끔씩 병원에서 봤던 텅 빈 눈빛이 되긴 하지만 빈도가 훨씬 줄었다.
엄니를 괴롭힌 건 결국 수술한 다리의 고통이 아니었고 그야말로 노인성 우울증... 밤새 찾아본 결과 갑작스런 질병이나 충격으로 오는 노인성 우울증은 감정의 슬픔이나 우울이 아니라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아프다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지난 설날, 이틀 동안 엄니는 밤새 통증에 시달렸다. 언뜻 보기엔 엄살로 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어디가 아픈지 모르셔서 밤새 나는 스테이션을 왔다리 갔다리... 결국 진통제를 복용하고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주사도 맞았지만 나아지지 않아 밤새 쭈그리고 앉아 계셨었다. 퇴원하시고는 명치 주위로 커다란 띠가 둘러있는 것 같다고 식사를 제대로 못 하셨는데 그러한 심한 통증이 대표적 증상이었던 것이다.
불면과 정신적 무기력과 인지장애, 체중감소 식욕감퇴, 타인에 대한 무감, 무관심, 의존증세, 집중력 저하, 신체적 무력... 무엇보다도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석달 동안 저 모든 증세를 엄니가 다아 갖고 있었는데, 슬픈 것은 누구한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것.
여기 오시던 첫날 무슨 말끝에,
웃어지도 않고 울고 싶어도 울음이 안 나온다. 그게 병이지 뭐냐. 그저 펑펑 울었으면 좋겄는디....
자식을 다섯이나 두고, 지금은 속 썩이는 자식도 없는데 엄니는 왜 펑펑 울고 싶으셨을까?
나는 묻지 않았다.
지금 엄니는... 퇴원하기 전 당신이 스스로 우울증이 나았다고 느낄만큼 좋아지셨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직 70퍼센트밖에 나은 것이 아니었다.
불면은 약물로 잡힌 듯하고 식욕부진과 체중감소도 빠르게 회복 중...타인에 대한 무감이나 무관심도 많이 개선됐고, 집중력 저하는 아직도 꽤 있지만 초강력 울트라로 내가 잔소리를 하는데 착한 초등학생처럼 가만히 계시는 걸 보면 맘이 짠하다. 어쨌거나 신체적 무력이 가장 개선이 느린 것 같다.
그리고 노인성 우울증은 치매와 대단히 유사해서 가성치매로 불리는데 우울증 치료가 되면 치매증세도 없어진다는 것. 이거 보고 야호!!! 했다.
어쨌거나 노인성 우울증과 치료법 검색을 하다보니 우울증 진단표가 있길래 내가 해 봤더니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의 나는 백퍼센트 우울증... 흐미!!!!
여하간 하루하루가 정신없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내 어머니를 보면서 삶의 허망함에 시달린다.
뜻대로 안 되겠지만 나는 다음 생은 없었으면 좋겠다.
조잡한 영혼의 선택이 다음 생의 세속적인 축복을 갖고 태어나고, 세련된 영혼의 선택이 역시 다음 생의 한 없는 고뇌와 고통의 삶으로 태어난다는 걸 나는 믿는데 나는 세련과 조잡의 영혼 그 경계의 어디 쯤을 헤매고 있는 걸까?
관계는 슬픈 것이고 욕망은 부질없으며 사랑은 얼마나 가볍고 가볍게 이기적이며 자기애적인 집착만이 싸구려 플래스틱 상품같은 내구성으로 세상을 굴러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노인성 우울증인가??!! ㅎㅎ
그리고....
靑史님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좋은 음식은 엄니가 잘 드시고 계십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고 계신, 그리하여 그것을 위해 마음의 움직임을 외면하지 않고 몸의 수고를 마다하시지 않았던 영혼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유달리 좋아지신 엄니는 靑史님의 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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