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그래.. 그런 것이다.

오애도 2012. 1. 25. 01:20

고향엘 다녀왔습니다.

이번 설은 참...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지요.

내려가기 전 날 문득 열 네살 때 집 떠나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 했고 많은 것들은 변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나는 하나도 안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마흔 아홉이 됐고 하늘의 뜻을 알 나이가 됐는데 어째서 나는 그 열 네살 스물, 서른의 생각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울엄니 계시는 집은 아직도 내겐 '우리 집'입니다. 일 년에 열 흘 이상 머물러 본 게 그 열 네살 이후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거긴 내 가족이 있는 우리 집이었던 것이지요. 하여 그 많은 세월, 명절이면 감히 안 가는 일을 상상도 안 해봤습니다.  집에 가면 꾀 부린 적 없이 열심히 일했지요. 엄니가 일하러 다니셨을 때는 나 밖에 일 할 사람이 없었고 일 안 하러 다니셨을 때는 뭐 당연이 나는 밥순이가 전공이었으니까 했고 올캐 하나 들어왔을 때는 뭐 남의 집에서 일하는 게 즐거울까 안됐기도 했고 당연히 니일 내일이 없었으니까 했고 올캐가 셋이 됐을 때도 뭐 역시 내일이고 우리집 일이니까 별 생각없이 열심히 했고...

그런데 말이지요. 그거 갖고 생색 내 본 적도 잘난 척 해본 적도 또 그럴 생각으로 한 것도 아니었는데 몇 해 전 즈그 새끼가 감히 고모한테 부린 천하의 만행을 적반하장으로 나를 미워하는데도 돌린 손 아래 올케가 내가 그리 일하는게 맘에 안든더군요.

처음엔... 하도 같잖고 가소로워서 분기탱천했다가, 인간이 어리석어서 그렇겠지... 했다가 결국 나도 같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물러설 때와 나갈 때의 조절에 실패를 했던 것이지요. 어쩌면 한참 전에 나는 그야말로 진짜로 집을 떠났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나쁜 것은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꼭 내가 해야될 것 같아서 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나 피해의식을 갖게 했을 수도 있었던 것이지요. 옳다고 해서 다아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35년이었습니다.

 

의무라는 것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나는 내 집이고 우리 가족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의무였고 해야만 하는 일인지라 뭐 불만도 투덜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즐겁게 했었지요.

 그동안 조카들 세뱃돈 주는 재미로 일부러 세배를 받고 넉넉하게 세뱃돈도 주었지요. -올 해는 안 했습니다.-공부 안 하겠다는 넘 데려다가 공부도 가르쳤고 방학 때면 조카들 불러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기도 했지요. 그건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고 당연히 가족이니 뭐 그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그들의 가족이 아닙니다. 그저 가족에서 파생된 그저 관계로써의 '고모'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나는 그들도 엄니와 똑같은 가족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즐거운 의무라고 여겼지만 그건 시쳇말로 오바였던 것이지요.

내가 결혼을 해서 가족을 만들지 않는한 어쩌면 진정한 가족은 울엄니..와 아직 혼자인 막내...겠지요.  

 

한참만에 -거의 일년 만에- 아부지 산소에 성묘를 갔었습니다. 문득 오빠들 사이에서 절을 하려는데 불쌍한 애도 왔냐.. 하시는 듯 한 느낌이 들더군요.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더 어릴 때 엄니 아부지 떠나 있을 때도 내가 불쌍하다거나 울아부지가 나를 가엾게 본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습니다. 다만 미안해 하셨지요.  장례 마지막 날 불 속에서 백 미터를 날아와 내 앞에 90도로 꺾여 꽂혔던 아버의 수저를 보고 엄니가 말하셨었지요. 아부지가 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가시나보다...

드디어 나도 아버지에게 가엾어 보이는 홀로 늙어가는 추레한  딸래미가 된 모양입니다.

 

모두들 내려가고 나는 잠깐 아버지 묫등 쓰다듬으며 혼자 말했습니다. 

아부지... 보고싶네...

그러고 돌아서 내려오는데 등 뒤에서

 이제 그만하믄 됐다. 애도야. 애썼다.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는 차에 타서 줄줄 울었습니다.

마치 아이가 어딘가 서러워서 삐쭉삐쭉하는데 왜? 누가 그랬어? 하고 엄마가 얼러주면 와앙 울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명절 날 모두 돌아가고 나만 남았습니다. 그때가 온전히 엄니랑 나랑 둘이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시간입니다. 옛날 얘기, 얘들 가르치는 얘기,  지금 일어나는 동네 일들... 밥 차리면서도 얘기하고 커피 마시면서도 얘기하고 자려고 누워서도 얘기하고....

낮에 오기 전 엄니한테 말했습니다.

엄니, 올 추석부터 나 안 내려올겨요.

울엄니 눈이 똥그래지셨습니다.

삐져서도 아니고 기분 나빠서도 아니니까 섭섭해 하지 마셔...  엄마 보러는 따로 올겨. 그동안 명절에 안 오믄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상한 겨. 그리구 내가 이 나이까지 이러구 끼어 있는 게 옳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그런겨. 어디 해외여행을 가든 놀러를 가든 할거니께 걱정 마시고... 시집 보낸 셈 쳐요.

 

서울 올라오는 차 속에서 애지중지 사랑받다가 멀리 시집가는 딸처럼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쩌면 산소에서 아버지가 정말로 내게, 이젠 됐다... 라고 말씀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맘이 편해질 리 없으니 말입니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권리 따위는 그닥 없는 오바스런 '의무'에서 비로소 놓여난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다만 자식으로써의 내 엄니에 대한 의무와 권리는 남아 있습니다. 웬일인지 그것도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땐 정말 '혼자'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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