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사와 악마를 두 번 봤습니다. 영화가 감동적이거나 유달리 재밌어서가 아니라 처음 보고 나서 논술 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 스타 시스템, 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종교가 갖는 보편성, 그리고 긴박한 데드라인을 축으로 하는 미스테리 모험-??!!- 스릴러...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물론 재밌는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면서 볼 수 있는 , 우리가 세계사 공부를 하면서 알았던 중세 기독교의 세계를 좀 더 폭 넓게 이해하길 바랬었습니다. 중세에 기독교와 과학이 어떻게 충돌했고 그 맥락이 무엇이었는지 정도.... 물론 아이들은 참 재밌는 영화... 에 불과하고 말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재밌는 이야기 속에 담긴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오늘 날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파묻혀 살고 있는 서양문화의 뿌리-그리스 로마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을만큼 시각을 넓게 하길 바랬는데 말이지요. 집에까지 걸어오면서 열심히 떠들다보니 그만 목만 잠기고 말았습니다.
오래되고 지나치게 커진 권위나 권력은 그 안에 분명 나름의 부패요소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들의 크기-둘레 높이 깊이 부피-는 너무 커서 어느 한 부분이 상하거나 상처 입어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한 때 종교나 신앙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있었고, 지금은 그 종교와 대립되는 인식방법 때문에 종교로부터 박해 받았던 과학이 이루어낸 기계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콘클라베를 진행하기 위해 모인 전세계의 추기경들이 캠코더를 들고 촬영을 한다거나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장면들은 어쩌면 종교와 과학이 서로 어깨를 겯고 가고 있다는,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주제를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과학이 머리를 상징한다면 신앙은 가슴을 상징할 것이고 머리와 가슴이 떨어져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콘클라베 장면이 전 세계에 티비로 중계 되는 것도 그렇구요.
궁무처장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 랭던 교수에게 바티칸 도서관으로 안내하기 전, 신을 믿느냐고 준엄하게 묻습니다. 난 학자요~ 머리로는... 머리 말고 가슴으로는요? -머뭇-신앙은 축복이지만.... 아뇨... 안 믿습니다.
신을 믿진 않지만 그는 옳은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납치된 추기경을 구하려고 합니다. 신을 믿지만 그 신의 이름으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는 악마는 그런데!!!! -스포일러 죄송- 그 둘 사이를 흐르는 공통점은 바로 신념이라는 것입니다. 둘 다 개인적인 욕망을 위한 신념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념들은 한 세계를 비극과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 되고 어떤 신념은 한 세계를 구하기도 합니다. 누구든 자신의 신념이 있고 그 신념이 옳다고 믿고 살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으면 이미 '상대'를 인정하려는 눈은 장님이 되거나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세상은 이분법적인 논리가 지배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밤과 낮, 하늘과 땅, 사랑과 미움, 어둠과 밝음, 선과 악, 과거와 미래... 그것들은 그러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느 한 쪽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미 고유의 특성, 즉 낮이나 미움이거나 밝음이거나 악이거나 미래... 라는 것들의 의미도 사라져버리는 것이지요. 하여 관습적으로 긍정적인 것들만 존재하길 바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듯이 악마는 타락한 천사입니다. 스승을 배신하고 다음 세상에서 선 악의 대결구도를 이끌게 하는 악인은 스승이 가장 아끼는 수제자라는 것은 홍콩 무술 영화만 봐도 알 수 있고, 수많은 설화적 이야기 구조를 차용한 스타워즈같은 공상과학영화에도 나옵니다. 그것은 아마 인간 누구에게든 그러한 이중성 내지는 양면성의 모습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여 누구든 천사인 척 하지만 악마일 수 있고, 악마라고 스스로 믿는 존재들 속에는 충분히 천사가 될만한 요소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이 더럽다고 깨달았을 때 세수를 하게 되는 원리처럼 말이지요.
맨 마지막에 새 궁무처장이 된 노 추기경이 랭던교수에게 말합니다. 종교는 흠이 많소... 인간이 원래 흠 많은 존재니까... 신앙은 신의 영역이지만 종교는 그러나 인간의 영역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영역에 인간적인 치부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겠지요. 마지막 말은 그러나 신앙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신을 믿지 않는 랭던 교수에게, 당신이 여기 온 것은 그분의 뜻입니다. 아니, 아닐 겁니다. 아뇨, 그 분의 뜻이지요.... 결국 신의 뜻은 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일 겝니다.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옳게 살고 있는가... 는 스스로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생각해볼진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바른 삶'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를...
같은 작가가 쓴 작품들은 사실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나 줄기가 있습니다. 그 흐름이나 줄기는 그 사람의 지문이나 얼굴처럼 특성을 갖고 있지요. 하여 한 작품을 인상깊게 읽고 나면 두번 째 작품도 역시 그 맥을 짚을 수 있게 됩니다. 다빈치 코드는 책으로 읽었고, 천사와 악마는 영화로만 봤지만 당연히 맥을 짚는 일이 너무 쉬워져버린 것은 분명 아침 드라마 보고 그 뒷 이야기 짐작해 내는 칠순 넘은 울엄니의 시각과 별 다를게 없다는 것이겠지요.
글을 쓰건 영화를 만들건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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