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획은 말이지요...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내에 해야할 일들-가계부 쓰기, 은행업무보기, 청소, 아침밥 먹고 잠시 빈둥대기-을 해 치우고 점심 무렵 혼자서 산행을 할 생각이었지요. 아침 엉영부영 먹고 점심밥 짓고 있는데 친구가 뭐하냐?? 하고 전화을 했습니다.
점심 묵고 산에 갈겨~~
라고 했는데 결국 그냥 눌러 앉아 못가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퀼트 천을 정리하고 새로 인터넷에서 주문을 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데다 밥을 먹고 나니 그만 몸이 나른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여 지난 일주일 동안의 축적된 피로가 아직 덜 풀렸다고 누가 들어줄 리 없는 변명을 하면서 그냥 주질러 앉아버렸습니다.
옆집에 누군가 이사를 오는 모양입니다. 작은 용달차에 실려 있는 이삿짐을 창밖으로 내다보면서 이상하게 이삿짐이라는 건 차에 실려 있거나 바닥에 부려 있을 때는 참 초라하고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햇살은 눈부신데 부엌 창문으로 부려지는 이삿짐을 잠시 내다봤습니다.
창문 열어놓고 잠시 컴퓨터에 있는 프리셀게임을 했습니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말이지요.
'운명'을 듣고, '문밖에 있는 그대'를 듣고,'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서른 즈음에', '브라보 마이라이프', '소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듣는데 그만 스멀스멀 눈물이 차올라서 줄줄 흘리며 흘리며 빈 곳에 카드 옮기는 짓을 했습니다. 노랫말이 갑자기 슬퍼진 것도 아니었고 프리셀 카드게임이 나를 서럽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쓸쓸하고 슬프구나... 하는 생각에 줄줄 눈물이 흘렀던 것입니다.
하여 잠시 이유없이 훌쩍훌쩍 울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나는 잘 울지 않습니다.
자랑삼을 일도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요.
그동안 아주 힘들어서 뭐야 사는게 왜이래?? 하고 서러움에 잠시 잠겨 울려고 맘을 먹으면 느닷없이 둘레둘레 나를 챙겨보는데, 없는 것 보다는 있는게 훨씬 많고, 안 되는 일보다 되는 일이 더 많아서 여기까지 살았지 싶어져서 그만 서러움은 없어져버리고 맙니다.
대신 별 것 아닌 드라마나 책을 읽다가는 그만 줄줄 우는데 눈물 솟는데 3초도 안 걸립니다.
어쨌거나 좀전에 훌쩍훌쩍... 이 아니라 꺽꺽거리며 울었다는 사실이 잠시 꿈같습니다.
누가 날 분통 터지게 한 것도 아니고, 서럽게 한 일도 없었고, 자기 연민에 휩싸여 나는 뭐 이러구 사나... 하는 따위의 생각도 안 했는데 말이지요. 한시간 전 쯤, 그냥 수돗물 줄줄 틀어가며 이렇게 집안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야.. 하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옛날에 시골 부엌에서 자싯물 떠다가 설거지 하던 생각이 나서요.
창밖으로 봄햇살이 눈부셔서 잠시 서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산다는게 슬펐지요. 서럽고 쓸쓸하고 우울한 것이 아닌 그냥 맑은 슬픔 같은 것... 그 마알간 슬픔도 꺼이꺼이 울음을 끌어낼 수도 있구나를 깨닫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 나이 마흔 여섯에 그만 봄햇살이 눈부셔서 울고 말았다고... 그 말할 수 없이 따뜻한 평화와 고느적함이 감사해서 눈물이 솟았나보다라고... 문득 꺼내볼 수 있도록 기억의 서랍 한켠에 넣어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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