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겨울에 한 발 담근 느낌입니다. 뭐 분명 낼 모레 쯤 다시 과하게 따뜻한 날씨로 돌아갈게 뻔하지만 어떤 일이든 맛배기로 한 번은 일어나는 일이지요. 엊저녁 친구집에 갔다 오는데 제법 쌩쌩 바람불어 춥더군요.
집에서 하는 일인지라 특별히 맘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신발 한 번 안 신고 지낼 수 있습니다. 하여 사실 바깥 날씨 크게 영향 받을 일도 없지요. 다만 아이들 올 시간에 잠깐 찬기 가시게 보일러 돌리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혈기 왕성하고 호르몬 분비 왕성한 녀석들이라 추위 안타는 것 같으면서도 을씨년스럽게 양말도 안 신고 다니는 여자애들 때문에 바닥은 제법 덥혀 놓아야합니다.
과한 생리통에 시달릴 때면 그게 다리통 벌겋게-??- 드러내놓고 양말도 안 신은 채 오들거리며 다니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이 녀석들은 너 메라그래라.... 입니다.
그리고는 생리통에 거의 죽습니다. 어이구!! 말뜩싸다 인석들아... 하면서 진통제 한알 물까지 받아주며 멕입니다.
시험기간은 닥쳤고, 한동안 정신없이 바쁠 것입니다.
하는 일도 없는데 입술 끝이 찢어져 너저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라이트 박스라는 걸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에 형광등이 있고 위에 유리나 아크릴이 덮여 있어 그 위에 천과 본을 놓고 불을 켜면 바로 천에다 모형을 그릴 수 있는 것인데 흔히 애니메이션이나 필름 카메라로 찍은 네거티브 필름 확인할 때 많이 쓰는 것이지요. 쓸데 없이 알뜰한 척 하면서 몇날 며칠 이것저것 폐품 이용해서 만들어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냅다 주문을 했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계산해 보면 뭐 그게 그거인거 같아서요.
종종 바느질을 하면서 이거이 뭔 짓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 말대로 시장에서 천원짜리 한 장이나 두 장이면 살 수 있는 것을 몇시간 씩 매달려 하고 있는게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것이지요. 사실 쓰는데에도 별 차이 없습니다. 뭐 더 내구성이 있거나 더 실용적이가 한 것도 아닌 것 같구요.
만들 때 즐거움이 그런 것들을 상쇄할만큼 큰가... 이건 반드시 측량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어떤 가치는 그 측정이 불가능한 게 많고 지극히 상대적일 테니 말입니다. -그럼 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여하간 그 라이트 박스 오면 기념으로 디테일한 아플리케 한 번 해봐야 하는데...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무엇이든 새 것이 오면 당장에 쓰지 못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병이지 싶습니다. ㅎㅎ
옷을 사도 일단 자알 모셔놓고 며칠 혹은 몇 주 지나 입습니다. 흠... 하여 그 라이트 박스도 언제 본격적으로 쓰게 될지는 모릅니다.
낼 모레 오는 친구 딸래미 주려고 하나 만들었습니다. 여자 아이임을 감안해 사랑스러븐 하트패치 원단을 썼지요. 원래는 바탕천으로 역시 분혹생과 흰색의 페이즐리 무늬가 있는 천을 함께 샀는데 친구가 맘에 들어서 바탕천은 죄 갖고 가고 저 패치 원단만 쬐끔 남은 것입니다.
아예 화려하게 무슨 방석이나 커텐 뭐 이런걸 만들어 볼 생각이었는데 내가 패치된 원단을 안 좋아해서리-진짜 퀼트도 아닌데 퀼트인 척 하는거 같아서- 뭉그적거리다 주인 걸려 분양된 것이지요.
어쨌거나 그렇게 셋트로 했으면 분명 지나치게 화려했을 것이고 따라서 필통의 본분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스타일은 흰색 광목천이나 무지천에 섬세한 퀼팅이 딱 떠올랐는데 역시 애들 스타일은 아닌데다 때도 심할 거 같고... 결국 화려하기 짝이 없는, 색-핑크- , 무늬-하트-, 디테일-리본-을 어떻게 죽일것인가를 고민하다 초록색이 선택됐습니다. 하하. 아주 적은 그린이 섞여서 그나마 통일성 획득...
별 게 다 심히 오래 걸리지요... 여하간 자꾸 초록이 좋아집니다. ^^;;
하여 완성된 필통은 그만 저렇게 점잖은 톤이 되버렸다는...
알라들에게는 사실 아주 유치하거나 아니면 귀엽거나 아니면 재치가 있거나... 가 좋은데 너무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고양이 필통의 재치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꽃분홍의 경망함을 어떻게 누를 것인가... 결국 퀼팅도 초록으로... ㅋㅋㅋ
어떤 것이든 지나치게 심각, 고민하는 버릇 때문에 실행과 행동이 느린 나!!!
별 거 아닌 필통 하나 만들면서 차암.... 그러니 대작은 어디 죽기전에 해 볼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두드리는 사이에 도착한 라이트 박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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