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Today is...

오애도 2007. 6. 21. 11:07

My birthday입니다.

매일 가던 산행도 미루고 일찍 일어나 쇠고기 넣은 미역국도 끓이고, 굴비도 굽고 호박나물도 들기름에 볶고 해서는 혼자만의 생일상을 차렷습니다.

작년까지는 꼭 계란부침이랑 소세지 부침 이런 거 했는데 올 해는 생일 선물로 받은 굴비구이로 대신했지요.

어릴 때 생일엔 꼭 계란 찜이 올라왔었습니다.  스텐레스 그릇에 새우젓 국물을 넣고 실파와 고춧가루를 좀 얹어 밥솥에 얹어 쪄주셨던 울엄니표 계란찜...

아침을 다아 차려놓고 울엄니한테 전활 했습니다.

오늘 니 생일이지?

안 잊으셨수?

어제까지 생각했다가 지금 전화 받으니께 생각났다... 생일이믄 뭐햐. 아무것도 못 주는디...미역국은 먹은겨?

지금 먹을라구 그랴.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유...

.......  ......  고맙긴 뭐가 고마워. 부모 잘못 만나 고생만 하고 살았는디... 호강을 하구 살었어야지... 

어릴 때 호강하구 살믄 말년이 고생인겨유. 내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디...

잘 살긴 뭐가 잘살어. 할머니한테 구박이나 받았지... -경우바르고 유쾌하셨던 울 할머니 이상하게 위로 아들 둘 낳고 딸 낳은 울엄니한테 섭섭해 하셨고, 나 자라면서 뭐든 지지배와 아들을 차별하셨었다. 늘 지지배는 이래야 되는겨. .. 를 입에 달고 다니셨는데 어릴 때 집 떠나와 두 달 쯤 됐을 때 할머니가 너 보고 싶으시다더라는 울아부지 전언에 목밑에서 울컥 했던 기억과 함께 지금은 울 할머니 이해한다.머리나 이성으로가 아니라 가슴과 감성으로...-

그래두 할머니가 분명 나 잘되라고 저승에서 빌고 계실겨~~

그려. 그럴겨....  

여하간  건강하고 모자르지 않게 낳느라 애쓰셨어유. 큭큭.

미역국 잘 먹고 잘 지냐... -엄니와 통화할 때믄 아무 생각없이 충청도 사투리 버젼이다-

 

며칠 전 부터 생일 앞두고 생각했었습니다. 

엄니한테 고맙다는 말을 해야지...... -내가 죽을라나???!!!-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그 이전에 비해 지금이 뭐 별로 대단히 나아진 거라고 하나도 없지만-나아지긴 커녕 어떤 것은 물리적으로 더 나빠진 것도 있다- 그래도 새록새록 나 살아가고 살아있는 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점점 '내'가 더 좋아집니다. 사는 게 즐겁고 감사하고 뭔가에 대해 자꾸 믿음과 희망이 커집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을 돌아보면 문득 굽이굽이 산들을 넘어왔는데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그 산들이 지금은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곰살궂지도 호들갑스럽지도 또한 상냥하지도 그렇다고 스스로 다가가지도 못하는 인간인 나를 불가사의하리만치 아껴주고 사랑해줬던 사람들이 그 삶의 굽이굽이에 숨어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십대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날 지켜줬던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축복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들은 다른 어떤 누구도 아닌, 잘나서도 이뻐서도, 상냥하고 변덕스럽고 곰살궂어서도 아닌 그저 인간 '오애도' 를 사랑해줬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아마 백아와 종자기처럼 어떤 누구도 이해 못하는 것들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을 그 삶의 갈피갈피에서 만났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들이 어쩌면 지금 느끼는 삶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의 기저를 이루고 있을 터입니다.

 

직접 끓인 미역국을 앞에 놓고 평생을 신산하게 사셨던 내 어머니의 삶이 떠올라 끅끅거리며 잠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가를 울엄니한테 설명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여 별거 아닌 오늘 나는 생물체인 '나'로 세상에 나왔고, 그 세상에 나온 것에 대해 감사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내 부모님과 천지를 주관하는 천지신명과 가끔 심술을 부리는 운명의 신에게...

 

사족: 블로그 개편되면서 뉴스레터 날리기가 안 되는 듯 합니다.

혹 들어오셔서 어?? 왜 글이 올랐는데 나한테 안 왔지? 하지 마시길... ^^;;

또 길 잃으신 분들 많겠군요.  점점 기운 빠지는 블로그 환경입니다.

'나, 일상, 삶, 그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요일...  (0) 2007.06.24
금요일... 주저리  (0) 2007.06.22
토요일...  (0) 2007.06.16
^^;;  (0) 2007.06.12
유월 주저리....  (0) 2007.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