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결심대로 청계산엘 다녀왔습니다.
믹스 한 봉지를 챙기고 더운 물과 우유, 그리고 가는 길에 베이글 샌드위치를 샀습니다. -점심을 안 먹었으니까...- 그리고는 예쁜 배낭을 메고 4432번 청계산 행 버스를 탔습니다.
지난 번 처럼 여차직하면 슬슬 내려오믄 되니까 별 부담도 없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던지라 -네 시 반-사람들은 죄 내려오는데 나만 씩씩하게 올라갔지요. 몇 주 사이에 산들은 노랑빛 많이 섞은 담록색으로 부풀어 있고, 길가 화원에는 꽃들이 한창이었습니다. 당연히 산길 여기저기 봄꽃이 지천입니다.
그렇게 낮고 납작한 자태로 피어있는 꽃들을 나는 몸을 낮춰 들여다 봅니다. 이것도 들여다 보고 저것도 들여다보고... 혼자서 그렇게 해찰하는 나를 사람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며 지나갑니다.
봄산은 잔뜩 부풀어 있습니다.
어릴 때 진달래나 찔레순 따위를 꺽으로 들판을 헤매던 내 기억 속에 들판은 눈앞에서 몽싯거리며 푸르러져 가곤 했습니다.
지금 바라보는 산등성이나 들판은 그때보다 훨씬 넓은 시야로 나즈막하게 혹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누워 있습니다.
영혼의 키만큼 보고 느낀다면 나는 그렇게 하나의 봄풍경을 거대한 한 폭의 그림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봄그림이, 풀숲에 꽂혀 있는 삘기나 찔레나무 틈새로 비죽이는 찔레순 혹은 밭둑에 숨어 있던 수줍은 할미꽃으로 그려진 작고 구체적인 사물로 그려진 사실적인 정물화라면, 지금은 계절이 주는 생동감, 생명의 경이로움, 작은 것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아름다움이 뭉뚱그려져 하나의 거대한 인상파적인 풍경화입니다.
내 영혼의 키가 자랐고, 그것이 무르익은 탓일겁니다. 그때의 봄이 지금의 봄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혼자서 낮고 고즈넉한 산길을 걷습니다.
담록색이 만들어내는 그늘조차 연한 초록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혼자 걸으며 나 어쩌자고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나와 진세처럼 느끼며 사는 지가 새삼스레 서럽습니다.
힘들면 발길 돌려야지 했다가 깔딱고개 넘어 산마루까지 올랐습니다. 사람 하나 없는 고갯마루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아무도 없길레 참았던 방귀도 뀌고-??-, 맘 편하게 꺼억 트림도 했습니다. 하하하
가끔 재잘대며 쉬는 시간에 몰려나오는 아이들처럼 바람이 물려와 머리위의 담록색 잎들을 흔들어댔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비벼대며 간지럽다는 듯 새새 소리를 내며 내 머리 위에서 붐빕니다.
난 잠깐 거기서, 잘 살고 싶어유~~ 아부지 ...하고 실없는 소리도 했습니다.
분명 청계산 산신령과의 독대는 성공적입니다. 그래도 살아 있고 또한 살아내는 내가 고맙고 감사했거든요.
봄산은 저렇게 부풀어 오릅니다.
생명과 자연의 경이로움이지요. 어릴 땐 산과 들이 부푼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습니다.
저 봉싯거리는 산들을 보세요. 살아 있는 것 같지요??
올라가면서 가장 많이 봤던 꽃...
이름은 모른다.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참 예쁘다. 삭깔도 자태도...
내 점심이자 저녁...
치즈 넣은 배이글 빵으로 만든 김영모 빵집 샌드위치. 담백한 맛에 필 꽃혀서리 종종 애용할 듯...
깔딱고갯마루...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나는 저기에 잠깐 앉아 있다가 내려왔다. 거짓말처럼 이름 모를 새가 발밑에 와서 재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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