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흔적 없이 살다 갈 수 있을까?

오애도 2018. 4. 15. 16:00

어제 큰오빠네 딸내미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방학 때마다 서울 올라와 일주일 쯤 머물다 가기를 여러번 했는데 어느새 결혼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어가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애,경사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친척들도 모두들 다아 늙었고 아이들은 이미 아이들이 아니더군요.

 어느 순간부터 난 결혼식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오빠 결혼식 때부터였나... 막냇동생 때도 그랬고...

그때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부부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사진속의 내 얼굴 가리켜 이사람이 누구야? 하면 -그럴 가능성 따위는 1도 없을 거란 걸 나중에 알았다. ㅋ- 그저 혼자 살다가 늙어 죽은 고모할머니란다... 따위의 답이 나오는 영 재미없는 상상이 돼서였는데 지금은 별 흔적 따위 남기지 않고 살다 깨끗이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병 진단 받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내 이름을 걸고 17년이나 썼던 이 글들을-비공개글까지 합쳐 2000여편이나 되는...- 어떻게 어느 순간 삭제하고 죽을 것인가... 그리고 쌓아 놓은 퀼트 천들은 어떻게 어떤 순서로 처리할 것인가... 였습니다.

반면에 이름을 걸고 쓰지 않은 익명 사이트의 종류가 다른 200여편의 글들은 그냥 두고 나 죽어 영혼이 되어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다면 때때로 그 글들을 둘러보며 행복해 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그리고 내가 누군지 모르는 글에 보냈던 그 고맙고 감동적인 반응들...


블로그 글은 사실 블로그 폐쇄를 하면 한큐에 날아가겠지만 익명 사이트의 글은 일일히 찾아 비밀번호를 치고 삭제해야 하기 때문에 꽤 성가시기도 하고 혹여 목숨이 오늘낼하면 그게 쉬운 일도 아닐 테니 익명으로 쓰기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그 반응들이 그러나 고맙고 힘이 돼서 꽤 자주 올리게 되는데 지금은 오래 전 순서부터 내 블로그 비공개 게시판에 댓글까지 다 복사해서 옮겨놓고 원글은 하나둘씩 삭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것들도 한큐에 보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사람이 썼던 온라인의 글들을 삭제해 주는 직업이 있다고 하더군요.

인터넷 장의사... -이름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서늘해졌었다-

죽은 사람의 글... 쓸 때는 분명 영혼을 실어 썼겠지만 쓴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종종 백혈병에 관한 검색을 하다 보면 치료 도중 다른 세상으로 간 사람들의 블로그 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 치료 과정이 매일매일 올라오다 어느 날부터 뚝!!! 끊기고 댓글의 어느 부분 쯤에서 마지막이 고통스럽지 않았기를... 따위의 글을 보게 되면 문득 가슴이 서늘해지고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그리고 그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게 됩니다. 부디 좋은 곳에 갔기를...

 그러면서 그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날이 내게 오면 내가 저질러-??- 놓은 것들을 부디 한번에 훅!!! 날려보낼 만큼의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허락되기를...


뭐 어쨌거나... 참 다행인 것은 죽음조차 토닥토닥 어깨를 결으며 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하하.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나 이론으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

참 별걸 다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 울 엄니 아부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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