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하루 건너 하루씩 그릇을 깨고 있다.
한 해에 한 번도 안 깨는 그릇을 새해 날 밝은지 나흘 지났는데 벌 써 세 개 째다.
꿈에서 그릇을 깨면 해석하기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쨍그랑!! 하고 소리내면서 깨지면 깨진다... 라는 의미의 상징성으로 보면 어떤 일이 깨지거나 어그러지는 경우, 또 하나는 물리적으로 깨지는 소리가 났으므로 소문 날 일이 생기거나 하는 경우...
오래 전에 꿈에서 유리 컵을 주욱 씻어서 엎어놨는데 한 개에 금이 가 있었다. 그 때가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늘 국어를 백점 맞던 아이의 국어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깨고 나서 문득 한 개 틀리겠군... 했다.
과연, 시험 끝나고는 망했어요~~ 하면서 반어법으로 전화 하던 녀석이 소식이 없더니 그 다음날 진짜 망했다고-정말 한 개를 틀렸다-전활 안 한 거란다. 뭐 똑같이 가르쳤는데 어떤 알라는 백점 맞고 어떤 알라는 90점 맞는 것은 순전히 얼라의 능력이지 선생의 능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첫날은 싱크대 선반 위에 올려놨던 작은 소스그릇이 떨어지면서 머그컵의 모서리를 쳤다. 놀라운 것은 꼭 스쿱으로 떠내듯 도기가 얇게 포가 떠졌다는... 하여 컵은 못 쓰게 됐다.
다음 날은 역시나 소스 그릇이 떨어졌는데 멀쩡하길레 씻어 올려 놨는데 설거지 하면서 보니 금이 가 있다. 하여 또 빼놓고...
어제는 또 같은 종류의 소스 그릇이 싱크대 선반 틈으로 떨어져 접시를 정확히 반으로 갈라놨다. -싱크대 선반의 틈이 그닥 넓은 것도 아닌데 틈새로 떨어졌다는 것이 참 불가사의하다. 십년 넘게 썼는데도 그런 식으로 그릇이 빠져 나오는 일은 없었는데 말이다.
뭐 생각해 보니 세 번 다 원흉이 십년도 더 된 소스 그릇이었고 세 번다 파편이 튀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깔끔하게 일부를 떼어내거나 금이 가거나 반으로 갈라놓거나 해서 치우는 수고로움도 별로 없었다는...
나란 인간이 보기완 다르게-??- 부드러운 데가 있어서-???- 그릇을 깨트리거나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무엇이든 날구장천 오래 써서 수명 다할 때까지 쓰는터라 쓰는 나는 괘않은데 보는 사람들은 넌덜머리가 날지도...
우얏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그릇이건 뭐건 몇년이고 몇년이고 지치지도 않고 관심도 안 갖고 쓰니까 알아서 자폭을 하는 모양이다. ㅋㅋ. 그리고 보니 예쁜 그릇이나 좋은 그릇에 대한 욕구 같은 건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
다이소에서 산 이천원짜리 나무 공기나 커피 사고 받은 유리 보울이나 할인 매장에서 1900원 주고 산 면기 따위를 주구장창 쓰고 있다는... 게다가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릇들을 해피하게 쓰다보니 가끔 올리는 음식 사진의 그릇들이 그 타령이 그 타령인 것도 깨닫지 못했다. 흠....
요즘의 물건들이라는 것이 내구성이 워낙 좋아서 닳아 없어지거나 쉽게 고장나는 일도 없으니까 나처럼 어떤 특정한 것에 한없이 무감한 인간에겐 축복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사라져 주는 것이 아닐까?
멀쩡하게 쓸 수 있는 것들을 유행이 갔다고 혹은 식상하다고 버리는 짓을 잘 못하는 것은 뭐 어려지 지지리 어렵게 살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성향 탓인지 정확하지 않다. 의외로 어떤 것들은 아주 좋은 것들 예를 들어 품질이 좋거나 성능이 좋은 것들로 인색떨지 않고 사기 때문이다. 다만 유행 때문은 아니고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문득 깨어져 나가는 그릇들을 보면서 그게 이제는 마쳐야 하는 인연의 메세지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사람이든 물건이든 시간이든 많은 인연들이 오래 됐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지만 때로 지나치게 오래 된 인연들의 식상함이나 진부함, 실망감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삶의 양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