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그러니 어서 시집가... 한다고, 그러니 이혼하고 나와... 할 순 없다!

오애도 2001. 11. 5. 02:13
맑은 바람이 부는 늦가을의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이 우리집에서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잠깐, 엉망진창이 되자는 뜻에서 엉진계 어쩌구 하는 계이름을 붙이기도 했는데 과연 뜻대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말한 엉망진창이란, 모두들 우아한 싱글들이었을 때 모두 시집을 가서 이 계가 엉망진창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말은, 혹은 이름 붙이기는 그렇게 했지만 우리 중에 누구하나 결혼에 대해 그렇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초조해 하거나 안달을 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쨋거나 그런저런 연유로 지난번에 얘기했던 그 고정 멤버가 모였습니다.
가장 연장자인 친구는 병원 검사 결과가 안 좋아 수술하고 병원에 누워 있는 탓에 빠졌습니다.
애엄마인 두 친구는 신랑에게 아기를 맡겨 놓고, 이게 얼마만의 기쁨이자 행복이냐며 방에 들어서면서 환성을 질렀습니다.
취미가 손님 접대이고, 특기가 요리인 나는-^^;;- 청국장도 끓이고, 명란젓 넣은 계란찜도 하고, 뻘겋게 오뎅조림도 하고, 쌈장도 만들고, 그리고 삼겹살 목살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맥주 몇 병과 함께 왁자하게 고길 구워 먹었습니다.
그야말로 단지 만남을 위한 만남으로는 넉 달 만이었습니다. 넉 달 만에 만나는 것이 뭐 그리 오래간만이냐고 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둘이 결혼하기 전, 그리고 알라를 낳기 전에는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비정기적으로는 일주일에 두 번도 만나 엊그제처럼 건전하게 놀았던 것에 비하면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화에 아이 키우는 얘기가 칠십퍼센트 쯤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산! 구십퍼센트 였던 것입니다.

그 중 한 친구가 그랬습니다. -그녀는 정말 마흔을 코앞에 두고 올 해 어렵게 아일 낳았습니다.-
내가 지금 가장 부러운 것은 '아이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결혼을 했든 안했든 말이야... 그녀가 덧붙였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절대로 아이가 싫다, 혹은 불행하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녀가 하는 말의 본질은 아마 자신이 없으면 안되는 그리하여 자신의 손길이 한 시도 없이 살 수 없는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담과 그로 인한 물리적인 '불편함'일 것입니다.

불행과 불편은 다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불편함이냐 기쁨이지... 라고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나는 혼자 살면서 불편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무거운 생수통 얘길 언젠가도 했지만 사실 오래된 집의 높은 곳에 달려 있는 형광등을 갈아 끼워야 할 때라든가, 어제처럼 세탁기를 받치고 있던 벽돌이 어긋나 세탁기를 바로 올려놓아야 할 때 혼자서 그걸 갖고 낑낑대다 보면 사는게 뭐가 이래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소하게 세탁기 혼자 옮기기 불편하다는 불평을 하다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결혼 안한 탓으로 돌리고 빨리 짝을 찾아야 한다고 성화를 합니다.
그야말로 불행한 인생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친구는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나무랄데 없이 자상한 신랑에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도 낳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내 이렇게 오랜만에 나와서 행복하고 기쁘다는 얘길 했습니다.
그럼 그녀의 삶이 불행한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그녀가, 아이나 서툰 요리 같은 걸로 툴툴댄다고 해서 누구도 그녀에게 결혼생활 그만 때려치고 나오라는 얘길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지나치게 궤변처럼 들리고 억지 논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싱글 두 사람 중에 누군가 야 불편해 죽겠어, 하는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지난 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나는 정말 아무런 사심 없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이미 결혼 해 아이가 둘씩인 친구를 보며, 그리고 가끔 이야기가 옆으로 새서 아이 얘기를 할 때는 내가 없는 것을 이루어 놓고 있으니 그쪽으론 머쓱해지기도 했습니다.
그건 부러움도 아니었고-부럽다는 것은 그것을 간절히 원해야만 생기는
감정이므로- 그렇다고 그 중에 한 친구가 우리 애는 공부 안해서 속상하다는 말에 나는 정말 행복해, 그렇게 공부 안해 속썩을 자식도 없으니... 하는 따위의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의 현상에 대한 인간적인 인식-결핍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그런 말도 들었습니다. 혼자 사니 참 좋겠다...

어쨋거나 내가 지겹다 하고 말하는 것과 결혼한 그들이 지겹다하는 것에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르겠지요.
그러니 어서 시집가...라는 내 말에 대한 반응대로, 그러니 이혼하고 나와.... 하진 않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