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소백산 산행 후기...

오애도 2006. 10. 30. 09:38

소백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늘 만나는 다섯이 모여서 왁자하고 유쾌하게 새새거리거나 깔깔거리며 말입니다.

쌀 한가마 가까운 무게를 이끌고 그래도 비로봉 정상에 깃발을-??- 꽂은 게 아니라 가서 반쯤은 아삭거리는 컵라면을 점심으로 먹고 내려왔습니다.  

헥헥대며 산을 오르고 다시 몇 개의 능선을 따라 비로봉까지 가는 길은 장관이었습니다. 발밑으로 산들이 겹겹이 물결치는 모습으로 멈춰 서 있었습니다.

나야 여전히 높은 산 헉헉 오르는 일이 익숙치 않아서 버버거리기는 했지만 잎을 다 떨구고 벗은 몸으로 서있는 높은 곳의 키작은 나두들이며 지형상 한 그루 나무 없이 키낮은 풀들만 바람에 물결치던 비로봉 오르던 길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거기까지 친절하게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들이 이어진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편리함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게 먼저인지, 여전히 익숙하게 용서되지 않는 자연 속 이물감에 대한 거부감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길이란 사람들이 다니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은 어떤 것이든 길을 먼저 내는 것입니다. 길을 먼저 내고 건물을 짓고 그리고 사람들이 다니지요.

하지만 그 산꼭대기 능선의 길들은 아마도 사람들이 먼저 만들고 거기에 편리함과 안전성이라는 서양적 사고가 합쳐진 역작-??!!!-들로 봐 주지요. 여하간 편리한 것과 안전한 것은 굉장한 미덕이니 말입니다.

뭐 올라갈 때는 그런대로 씩씩하게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그야말로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왔습니다. 심각한 상체비만 탓이었는지 나지막한 능선에서 잘난척하며 퍽퍽 내딛던 발걸음 탓이었는지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서 나중에 계단 내려올 때는 민망하게 엉덩이를 정면으로 하고 뒷걸음으로 그것도 발을 질질 끌며 내려왔습니다. 하하. 겉은 방수누벅 가죽에 고어텍스 내장에 비브람 밑창으로 무장한 고급 등산화 신은 인간으로써는 참 민망한 일이었지요. ㅋㅋ

그 와중에 그만 꽈당당!! 하고 세번 씩이나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꼭대기 능선 쯤에서 넘어져서 오른 쪽 무릎과 왼 손가락 약지와 무명지 밑둥이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습니다. 내려오다 중간 쯤에서 또 한 번 넘어졌지만 그 많은 돌을 비켜서 사뿐히 낙엽 위로 주저 앉았고 최악은 바로 다아 내려와서 화장실 앞에서 넘어진 것입니다. 어찌나 꽈당!!!! 넘어졌는지 넘어지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과 함께 육두문자가 나왔거든요.  ^^;;

넘어지면서 하필이면 왼쪽 무릎이 튀어나온 돌에 부딪쳐서  '무릎이 나갔구나' 할 정도로 심각하게 아팠는데 다행이 하룻밤 자고 났더니 견딜만 했습니다. 물론 오늘 병원에 가 봐야 알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 별일 없을 것입니다. 넘어지는 그 순간 육두문자가 나오긴 했지만 집에 돌아와 아침에 눈뜨고 곰곰 생각해보니 아마 소백산 산신령이 나를 사랑했던 모양입니다.하하하. 그래서 이쁘다고 만진다는 것이 그만...

가는 곳마다 세번 쯤 경건한 마음으로 돌을 올려놨었는데 흠....

어른들이 그러시길 종종 신이 이쁘다고 만진다는 것이 사람에겐 더러 그런 사고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겠지요. 하여 왠지 내몸에 걸친 액이 이번 기회로 다아 나갈듯한 기대가...-특히 뚱뚱한 몸매-^0^  

하이고 소백산 산신령님 감사합니다!!!

 

잠을 한숨도 못자고-자리 옮기면 가뜩이나 못자는데 늦게 마신 커피한테 당해서리- 무려 아홉시간 산행을 했는데 나 때문에 늦어진 하산임에고 불구하고 친구들은 야~ 니 덕분에 시간 잘 맞춰서 내려와 서울 가는 길에 안 막힐거라고 위로해 마지 않아 주었습니다. 그때문인지 어쩐지 올라오는 길에 쌩쌩이었고, 내려와서 먹던 두부집의 음식도 죄 맛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모여도 늘 유쾌한 친구들입니다.

산행하기 전날 밤에는 한 친구가 오이를 사다가 휴대용 채칼로 썰어서 주욱 늘어놓고 얼굴에 오이를 붙이는 동안 다른 친구는 또 다른 친구의 새치를 뽑아주기도 했습니다.

하여 오랜 친구는 오래 신어 편안한 신발과 같습니다. 분명 다르지만 달라서 더 좋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름에 시비걸지 않으니 말입니다. 

모두들 그렇게 별일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편안하게 늙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어찌보면 지금이 가장 좋을 때인지도모릅니다. 이렇게 소백산 정상까지 깔깔, 새새거리며 오를 수 있는 건강함만으로도 말입니다.

친구말대로 우리가 남은 날들에 얼마나 더 높은 산들을 오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말입니다.

 

돌아와 별일 없이 일요일 하루 밤 열 두시까지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다친 무릎과 찰과상을 입은 곳 빼고는 다리조차 뻐근하지 않아서 신기할 지경입니다.

아이고, 소백산 산신령님 감사합니다!!! ^0^ -세상의 모든 오래되고 깊고 아름다운 것은 추앙받아 마땅하다.-

 

 

 

행복하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