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그 날...

화창하게 맑은...

오애도 2006. 10. 25. 00:31

불의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지난 번 산행에서 사온 호박을 굵게 채썰어 밀가루와 반죽해 호박 부침개를 도시락으로 싸서 청계산엘 다녀왔습니다.

어제 새로 산 명품-??-등산화를 신고서 말입니다.

하늘은 챙!!하니 맑았고 이젠 제법 깔딱 고개도 깔딱거리지 않게 올라갑니다. 들어가서 바로 계곡을 끼고 휴식용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다음엔 땀 뻘뻘 흘리며 깔딱고개 올라가서는 2차로 과일을 먹고,  맨 마지막으로 이수봉까지 올라가 늘 앉는 자리에 앉아 동행과 더불어 두런거리며 거한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씩씩하게 내려와 땀에 젖은 옷을 입고는 학원으로 출근을 하는 것입니다.

흠.... 섭취칼로리와 소비 칼로리를 계산해 보면 분명 쌤쌤이겠지만 그래도 덜컥거리며 내려오고나면 제법 뱃가죽이 가벼워진듯한 느낌도 듭니다. ^^;;

 한동안 그렇게 산행을 할 것입니다.

지난 번에 산 입구 쯤에서 만난 할아버지 말씀이 청계산이 참 착한 산이라고들 한답니다. 험하게 고약하지 않고 말입니다.

사물에 사람한테 쓰는 형용사를 쓰게 되면 이상하게 그 사물은 사람의 심성을 갖고 잇는 듯 해보이는데 그 말을 듣고 정말 청계산이 착하고 이쁜 산이구나 하고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초입 쯤은 꼭 어릴 때 자주 다니던 동네 뒷산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때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나 혼자서 어슬렁거리며 오르곤 했었지요.

나뭇잎은 제법 떨어져 푹석거렸고 조금 내린 비 덕분에 푸석이며 일던 고운 먼지도 가라앉았습니다. 

이제 잔뜩 만추의 산으로 옷을 갈아 입겠지요. 거리거리의 은행잎이나 양재천 둑길의 활엽수들도 다아 색깔옷으로 서서히 갈아입는 중이더군요.  

 

 

헬스클럽의 근육운동이 제법 재밌습니다.

강도 높은 스트레칭도 재밌구요.

제법 팔뚝에 근육이 생겨서 조금 울퉁거리는데 어쩌자고 팔만 더 가늘어지는지...

체격에 안 어울리게 푸쉬업에 윗몸일으키기에 힘을 쏟는데 어쩐일인지 근 수는 하나도 안 줄어들고 있습니다. ^^;;

하여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무엇이든 하면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배우는 일에는 왕도도 없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하고 즐거운 일인지요.

 

 

 

 

요즘 중국 신화집을 읽고 있습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한자를 좀 더 잘 배워서 순전히 한자로만 된 책을 술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날이 갈수록 오래된 이야기, 오래된 책들이 살아있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엊그제 수업하다가 한 녀석이 책꽂이에 꽂아 놓은 니체 전집중 한 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후루룩 책장을 넘기며 하는 말이

책이 왜이렇게 누래요??

짜샤, 오래된 거라 그렇지.

얼마나 오래된 건데요?

어디 보자... 하고서 책 사고 싸인 해 놓은 걸 보니 83년도 청하판 니체 전집 중 '선악을 넘어서'... 그 때 아마  청하 출판사 측에서 몇년에 걸쳐 완역본 가로쓰기 니체 전집을 발간했었고 나는 돈이 되는대로 한 권 씩 사 모았던 것입니다. 

 나도 후루룩 넘겨보니 이런!! 새파랗게 밑줄이 잔뜩 그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 제법 열심히 읽었는 걸. 하고 감탄을 하긴 했지만 문제는 뭔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사실입니다. -밑줄은 왜 그은거야?? - 

어쨌거나 책을 산 날짜를 더듬어보니 무려 23년 전입니다.  내 나이 스무살... 그때 그 무슨 건방으로 니체 전집 같은 걸 읽고 밑줄을 그어댄 것인지 모릅니다.^^;;

 

지금은 물론 니체전집 같은 건 안 읽습니다.

현학적이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에 가슴이 떨렸던 시기는 풋풋했던 내 나이 스물 언저리였지요. 그 때는 니체와 싸르트르와 레이몽 아롱과 보봐르와 알베르 까뮈와 전혜린과 황진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황진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잊혀진 옛 연인같은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대신 아주 오래된 책들이 좋아집니다.

 

 

아직 읽어야할 책들은 세상에 널렸고, 배워야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세상엔 가득하고,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지천이니 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