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컴퓨터가 새로 왔고, 그야말로 도시락 싸갖고 다니며 운동하고 있으며 시험 기간인지라 머리 빠지게 바쁩니다. 날씨는 환장하게 좋고 어딘가 잔뜩 좋은 것들 쌓아놓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기까지 합니다.
새로 온 컴퓨터는 속이 쓰릴만치-그동안 고생한 게 억울하고 분해서...-환상적인 성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초강력 우퍼스피커는 쿵쿵 울리고, CD나 DVD타이틀 같은 것도 바삭바삭 폭삭하게 구울 수 있는데다 와이드 화면까지... 게다가 아주 저렴하게 구입해서 한 2년만 자알 쓰고 다시 산다고 해도 억울할 거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점점 첨단의 기기들이 업그레이드 되는 걸 보면 가끔 겁이 날 지경인데 이게 나같은 아나로그 인간의 촌스런 정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흠... 그런데 CD나 DVD굽는 프로그램이 이름이 네로 던걸요. 하하하.
로마를 불태운 네로황제의 이름을 딴 것이겠지요. 불타는 로마를 형상화해서 아이콘도 활활 불타는 모습이라니... 차암 귀엽습니다. 그렇게 활활 불타오르는 데서 화덕에 빵 굽듯이 구워라 뭐 이런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겠지요.
종종 그렇게 재기발랄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감하고 있자면 어딘지 모르게 참을 수 없는 귀여움이 느껴집니다. 하하하.
어쨌거나 그렇게 쿵쿵 울리는 스피커로 이걸 쓰면서 여기서 나오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따위를 듣고 있자면 갑자기 삶과 일상이 진짜 브라보!!! 스럽습니다.
여하간 먼저 쓰던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일일히 메모리 스틱으로 퍼다가 새 컴퓨터에 옮기고 쓸데 없는 데이타나 즐겨찾기 따위는 싸그리 삭제를 하고는 학원에 실어다 놨습니다.
오래 쓰던 컴퓨터라는 게 꼭 다 낡아빠진 속옷처럼 어딘가 함부로 버리기에 민망한 구석이 있는 터라 최선을 다해 정리를 했습니다. 물론 그걸 쓰는 사람은 다아 갈아엎어-포맷-쓰겠지만 그래도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새 물건이 주는 기쁨이란 것도 나름의 크기가 있습니다.
하여 이 가을에 뜻하지 않게 오래 쓰던 물건을 두개씩이나 갈아치우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사실 냉장고 바꿀 때도 그랬지만 컴퓨터는 훨씬 서운함이랄지 섭섭함이랄지가 느껴져서 마음이 그다지 심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건이란 것도 자주 오래 쓰면 그 나름의 색깔 혹은 정서따위를 품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것도 다른 누구와 함께 쓰는 것이 아닌 오로지 혼자서 쓰는 경우에는 그 강도가 더한듯 합니다.
여하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으니까 새 컴퓨터로 새 글을 자알 써보겠습니다. 후후. -이게 적당한 비유인가??!!-
한없이 소프트한 터치감을 느끼게 하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자면 글, 일, 사랑.... 무엇이든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어쨌거나 점점 버려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물건이란 것은 인간처럼 뒤통수를 치거나 실쭉샐쭉하거나 과하게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않고 늘 같은 모습으로 삭아가는 쿠울한 존재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훨 애틋 하답니다. 날 위해 묵묵하게 스스로를 바치는
모습이...
비록 소박한 것들뿐이지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하고 있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 속에서 산다는 것... 흠....
작은 걸 원하고 크게 기뻐하며 산다는 것. 점점 노련해집니다. ^0^
행복하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