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치통의 쓸쓸함. 두번째.
오애도
2001. 8. 23. 01:25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 가죽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밤새 아팠는데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잠을 잤을 것입니다.
얼굴 가죽 뿐만 아니라 머릿속 피부까지 전기가 오는 것처럼 저릿저릿해 졌습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오른 쪽 볼에서 왔을 때는 굉장히 걱정을 했었지요. 아무런 외상도 없는데 얼굴 한쪽이 손을 대면 저릿저릿해지는 것이 흡사 열날 때 피부에 무언가 닿는 느낌 같았습니다.
다른데도 아니고 얼굴인데다 머릿가죽까지 그러니 이건 분명이 무슨 혈압이거나 뇌에 이상이 있거나 하는 것일 거야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혼자 살면서도 병원이라고는 팔 힘줄 끊어졌을 때 외엔 안 가봤습니다.
이게 무슨 혈압이거나 하면 한의원이 나을 것 같아서 잘 아는 분과 함께 한의원엘 갔습니다.
토실한 손목을 잡고 맥을 짚더니 한의사 왈
밥 잘 먹죠?
네
소화도 잘 되죠?
네
변도 잘 보죠.
네
아무이상 없는디...
그럼 여기 얼굴이 왜그래요.
우선 약 한재 지어줄 테니까 먹어요. 혈액순환이 안되서 그럴거예요.
그러고 와서 그 맛없는 약을 먹었습니다. 뭐 다행이 얼굴의 그 증세는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한참후에 오른쪽 어금니 한쪽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난 후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치과엘 갔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를 뽑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똑똑한체 하는 나,
아니 무슨 이빨이 아무렇지도 않았다가 갑자기 이래요?
아닌데... 무신 증세가 있었을 텐데...
그때 비로소 난 그 욱신욱신 하던 증세가 이빨이 속으로 상하면서 나타나는 증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참 전에 얼굴 가죽만 아픈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럼...
맞어요
이그머니나
그때만 왔어도 안 뽑아도 될 것인데...
그리고는 덜덜 떠는 날 꽉 붙들어 앉히고는 반이나 남은 어금니를 쑥 뽑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왼쪽 얼굴가죽이 아픈 걸 보니 역시나 오래된 충치가 속으로 상해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빨리 가야할텐데...
그럼에도 선뜻 가게 되지 않습니다.
이빨은 빨리 갈수록 돈 아끼고, 이 아끼는 것이라는 충고를 수없이 듣지만 잘 되질 않습니다.
이러다가는 이빨 없는 노처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살면서 잘 안되는 것이 내 경우에는 병원가는 일입니다.
감기 몸살정도는 어차피 이건 시간 지나면 낫는 것이니까 약국에서 지어주는 약 먹고 한 이틀 끙끙 앓으면 그냥 낫습니다. 병원 가면 일주일, 안가면 7일 이라니까 그냥 칠일 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저히 안가고 못배기는 것이 바로 치과인 것입니다. 그것도 버티고 버티다 반미친다는 치통에 녹초가 되도록 시달린 후입니다.
이렇게 노화된 이빨을 어릴 때 유치 빼듯이 실로 감아 방문에 묶어서 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옆에 누군가 있다면 아마 성화를 해서 좀더 빨리 가게 되겠지요. 그럼 이빨은 좀 더 일찍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테구요.
이럴 때 화려한 싱글은 졸지에 초라한 싱글로 전락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데 아플 때는 뭐 씩씩하게 잘 앓는데, 꼭 이빨 아플 때는 엄마 생각도 나고, 있어보지도 않은 신랑 생각도-?-나고 그렇습니다. 친구들 보면 신랑이 성화를 해서 치과엘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치과 비용은 신랑이 버는 돈이겠지요?
음 그건 아주 고무적인 일이군요. 그런 의미로 시집 갈 때가지 벼텨?...
설마 마누라 치과비용 못 대준다고 내빼는 신랑은 없겠지요. 우하하하
각설하고, 나이 먹어 오는 증세의 제 일 순위가 삭아지는 이빨이라는 생각땜에 역시나 쓸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치과 기술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아쉬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연의 섭리일 것입니다.
생명없는 돌이나 금속같은 것도 오래 되면 부스러지고 닳아지는데 하물며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이 속성인 인간의 몸이야 말 해 무엇하겠습니까?
몸을 아낍시다.
치과엘 빨랑빨랑 갑시다. 에휴휴휴 무서버....
참고로 '참을 수 없는 치통의 쓸쓸함'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즐겨 읽는 하루키의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자면
'그래서 그 별장식 호텔의 침대 위에서, 나는 이제 청년기를 벗어나서 이미 체력적인 퇴조의 길로 접어든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젊었지만 그늘하나 없는 젊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며칠 전 단골 치과의사가 지적해 준 것이다. '이에 대해서 말하면 이제부터는 닳고 흔들리고 빠져가는 과정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그 의사가 말했다.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조금씩 저지하는 것입니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늦출 수 밖에"
-후략-
참으로 슬픈 일은 말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절대로 거부할 수도 막을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커다란 징후들을 읽어낼 때입니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과 그것과 비례해서 닳고 흔들리고 빠져나가는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눈, 맑은 정신, 순수한 마음, 건강한 몸...그것은 단지 이빨로 대표되는 사소한 징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곧 우리의 인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몇 개의 이가 시큰거리고 아픕니다
그러나 나는 치과엘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치과병원에 갖고 있는 원시적인 공포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갈아엎어야 할 이빨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세월의 길이와 깊이에 대한 쓸쓸한 자각때문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혀보다 250배쯤은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빨은 혀에 비해 형편없이 일찍 그 최후를 드러내는 것인지 ...
불혹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있는데, 미혹만 자꾸 늘어납니다.
어쨋거나 '이를 소중히 해야 한다네.'
영화 '마라톤 맨'이던가요? 로렌스 올리비에경이 맡은 악당 치과의사가 잔인하게 더스틴 호프만을 고문하면서 하는 대사랍니다.
아니 밤새 아팠는데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잠을 잤을 것입니다.
얼굴 가죽 뿐만 아니라 머릿속 피부까지 전기가 오는 것처럼 저릿저릿해 졌습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오른 쪽 볼에서 왔을 때는 굉장히 걱정을 했었지요. 아무런 외상도 없는데 얼굴 한쪽이 손을 대면 저릿저릿해지는 것이 흡사 열날 때 피부에 무언가 닿는 느낌 같았습니다.
다른데도 아니고 얼굴인데다 머릿가죽까지 그러니 이건 분명이 무슨 혈압이거나 뇌에 이상이 있거나 하는 것일 거야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혼자 살면서도 병원이라고는 팔 힘줄 끊어졌을 때 외엔 안 가봤습니다.
이게 무슨 혈압이거나 하면 한의원이 나을 것 같아서 잘 아는 분과 함께 한의원엘 갔습니다.
토실한 손목을 잡고 맥을 짚더니 한의사 왈
밥 잘 먹죠?
네
소화도 잘 되죠?
네
변도 잘 보죠.
네
아무이상 없는디...
그럼 여기 얼굴이 왜그래요.
우선 약 한재 지어줄 테니까 먹어요. 혈액순환이 안되서 그럴거예요.
그러고 와서 그 맛없는 약을 먹었습니다. 뭐 다행이 얼굴의 그 증세는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한참후에 오른쪽 어금니 한쪽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난 후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치과엘 갔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를 뽑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똑똑한체 하는 나,
아니 무슨 이빨이 아무렇지도 않았다가 갑자기 이래요?
아닌데... 무신 증세가 있었을 텐데...
그때 비로소 난 그 욱신욱신 하던 증세가 이빨이 속으로 상하면서 나타나는 증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참 전에 얼굴 가죽만 아픈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럼...
맞어요
이그머니나
그때만 왔어도 안 뽑아도 될 것인데...
그리고는 덜덜 떠는 날 꽉 붙들어 앉히고는 반이나 남은 어금니를 쑥 뽑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왼쪽 얼굴가죽이 아픈 걸 보니 역시나 오래된 충치가 속으로 상해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빨리 가야할텐데...
그럼에도 선뜻 가게 되지 않습니다.
이빨은 빨리 갈수록 돈 아끼고, 이 아끼는 것이라는 충고를 수없이 듣지만 잘 되질 않습니다.
이러다가는 이빨 없는 노처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살면서 잘 안되는 것이 내 경우에는 병원가는 일입니다.
감기 몸살정도는 어차피 이건 시간 지나면 낫는 것이니까 약국에서 지어주는 약 먹고 한 이틀 끙끙 앓으면 그냥 낫습니다. 병원 가면 일주일, 안가면 7일 이라니까 그냥 칠일 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저히 안가고 못배기는 것이 바로 치과인 것입니다. 그것도 버티고 버티다 반미친다는 치통에 녹초가 되도록 시달린 후입니다.
이렇게 노화된 이빨을 어릴 때 유치 빼듯이 실로 감아 방문에 묶어서 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옆에 누군가 있다면 아마 성화를 해서 좀더 빨리 가게 되겠지요. 그럼 이빨은 좀 더 일찍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테구요.
이럴 때 화려한 싱글은 졸지에 초라한 싱글로 전락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데 아플 때는 뭐 씩씩하게 잘 앓는데, 꼭 이빨 아플 때는 엄마 생각도 나고, 있어보지도 않은 신랑 생각도-?-나고 그렇습니다. 친구들 보면 신랑이 성화를 해서 치과엘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치과 비용은 신랑이 버는 돈이겠지요?
음 그건 아주 고무적인 일이군요. 그런 의미로 시집 갈 때가지 벼텨?...
설마 마누라 치과비용 못 대준다고 내빼는 신랑은 없겠지요. 우하하하
각설하고, 나이 먹어 오는 증세의 제 일 순위가 삭아지는 이빨이라는 생각땜에 역시나 쓸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치과 기술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아쉬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연의 섭리일 것입니다.
생명없는 돌이나 금속같은 것도 오래 되면 부스러지고 닳아지는데 하물며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이 속성인 인간의 몸이야 말 해 무엇하겠습니까?
몸을 아낍시다.
치과엘 빨랑빨랑 갑시다. 에휴휴휴 무서버....
참고로 '참을 수 없는 치통의 쓸쓸함'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즐겨 읽는 하루키의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자면
'그래서 그 별장식 호텔의 침대 위에서, 나는 이제 청년기를 벗어나서 이미 체력적인 퇴조의 길로 접어든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젊었지만 그늘하나 없는 젊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며칠 전 단골 치과의사가 지적해 준 것이다. '이에 대해서 말하면 이제부터는 닳고 흔들리고 빠져가는 과정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그 의사가 말했다.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조금씩 저지하는 것입니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늦출 수 밖에"
-후략-
참으로 슬픈 일은 말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절대로 거부할 수도 막을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커다란 징후들을 읽어낼 때입니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과 그것과 비례해서 닳고 흔들리고 빠져나가는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눈, 맑은 정신, 순수한 마음, 건강한 몸...그것은 단지 이빨로 대표되는 사소한 징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곧 우리의 인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몇 개의 이가 시큰거리고 아픕니다
그러나 나는 치과엘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치과병원에 갖고 있는 원시적인 공포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갈아엎어야 할 이빨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세월의 길이와 깊이에 대한 쓸쓸한 자각때문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혀보다 250배쯤은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빨은 혀에 비해 형편없이 일찍 그 최후를 드러내는 것인지 ...
불혹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있는데, 미혹만 자꾸 늘어납니다.
어쨋거나 '이를 소중히 해야 한다네.'
영화 '마라톤 맨'이던가요? 로렌스 올리비에경이 맡은 악당 치과의사가 잔인하게 더스틴 호프만을 고문하면서 하는 대사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