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그 날...

사과꽃 향기 속으로...

오애도 2006. 5. 5. 23:09

부석사엘 다녀왔습니다.

전생에 선묘낭자였는지-^^;;- 이상하게 그곳은 소박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듯 합니다.

사람도 음식도 책도 익숙하고 낯익어서 편안해진 것들만 집요하게 매달리는 성향탓일런지 모릅니다.

봄에 간 것은 처음입니다.

사과꽃은 도처에 피어있었고 분방하지 않고 또한 경망스럽지 않은 은은한 향내가 코끝에 닿았습니다.

 

중학교 일학년 교과서에 김지하의 시 '새 봄'이 제일 처음에 실려 있습니다.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뭐 이런 내용인데 이제 막 초등학교를 벗어난 알라들은 요따위가 무슨 시냐고, 나도 쓸 수 있다고 감히 건방을 떱니다.

그럼 난 그러지요.

"근데 이게 뭔 얘기같냐? 이 아자씨가 변덕쟁이라는 야그겠냐?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딴 말은 왜 하고 있는 거지?"

그럼 그제서야 알라들은 고개를 갸웃 거립니다.

하긴 고등학생이라 한들 시를 척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입니다.

어쨌거나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 망할 놈의 벚꽃이라는 것은 어!! 피었나 보네?? 하는 순간 푸슬푸슬 눈보라처럼 져버리는 탓에 그 화기라는게 형편없이 짧은 데 비해 사과꽃은 벌써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품이 제법 묵직하고 듬직해서 경망스럽게 잔바람에 꽃잎 떨구는 짓은 안 할 것 같았습니다.

 

하여 여행운 무지 좋은 나...

완벽한 사과꽃 무데기를 보고야 만 것입니다. 물론 주렁주렁 달린 사과도 감동적이지만 멀리서 보면 높은 온도에서 잘 튀겨낸 팦콘처럼 매달려 있는 사과꽃 그림도 자못 감동적이었습니다.

 

 

 

 

사람은 보지 마시고 뒤에 있는 사과꽃만 보세요. 꼭 팝콘 다닥다닥 붙여놓은 것 같지요?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 문살의 느낌이 참 좋아서요.

 

 

 

사과나무 심어져 있는 밭고랑 사이사이의 민들레들... 거름상태가 좋아 꽃의 색깔과 크기가 척박한 포도사이에서 피어나는 도시의 민들레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튼실했습니다.

저걸 보면서 한 마디...

'그러고 보면 유전인자가 전부는 아닌개벼요~~'

 

여하간 아주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었고 정말 누군가 인자하게 지켜보고 있다가 그대로 해 주는 것처럼 시간에서부터 먹을 것, 차편, 그리고 돌아와서 학원 수업까지 퍼펙트한 여행!!

같이 갔던 지인과 다시 부석사에 필이 파박!! 꽂혀서 늦가을 사과 익을 무렵 다시 가기로 했습니다.

  

어쨌거나 시험 끝난 덕분에 모처럼 쉬는 주말입니다.

원래는 오늘도 먼 길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그만 몸 컨디션이랑 날씨가-폭우가 내린다는 말에 놀라서리...^^;;- 협조를 안 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집안 청소나 하고말았습니다.

여하간 이틀 남은 휴일이 아직도 뜯지 않는 과자봉지처럼 듬직합니다. 무엇을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여유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내일 낮에는 수제비라도 떠야겠습니다. ^0^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