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수제비에 대한 소고

오애도 2001. 8. 15. 08:08
며칠 동안 내리 수제비를 해 먹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한꺼번에 많이 해 놓은 탓에 사흘 동안 점심을, 옛날 없이 살던 때를-?- 생각하며 지치지도 않고 먹었지요.
슈퍼에서 파는 냉면 육수를 사다가 여름 내 먹은 날라리 냉면- 냉면을 삶아, 사리를 얼음 서걱거리는 인스턴트 국물에 만 것-에 질린 탓에 큰맘 먹고 수제비 반죽을 했던 것입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멸칫가루를 넣고 감자와 호박을 넣고 기호에 따라-?-계란도 풀고 김가루도 얹고...
근사한 수제비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집니다.
그리고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땀을 흘려가며 먹는 것입니다. 나중엔 반드시 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야 합니다.
혼자 살면서 가장 많이 몸에 축적된 것이 아마 글루타민산 나트륨-일명 조미료-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는 그것이 주는 얕은 맛에 취해 하루 세끼 라면만 먹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먹을 게 귀하던 70년대 얘기입니다. 그때의 라면 국물 맛은 지금은 뭐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쨋거나 꿈을 함부로 꾸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꿈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지요. 결국 그 꿈이 이루어져 실재로 대학 다닐 때 라면만 세끼 먹고 산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오랜 세월을 매식과 인스턴트로 길들여진 입맛은 이제는 다시 180도 달라져서 엄마가 해 주신 소박한 음식으로 돌아섰습니다.
신 열무김치를 건더기로 한 된장 찌개라든가, 어릴땐 껄끄러워 싫어햇던 호박잎이라든가, 깻잎 찜-우리 집은 그것을 양념한 다음 밥위에 얹어 찌거든요-돌미나리 무침같은...그런걸 먹고 나면 뭔가 몸에 싸여 있는 노폐물 같은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인간의 간사함이라니...
수제비로 말 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 지긋지긋하게 먹던 음식입니다. 어릴 때지만 입에서 밀가루 냄새가 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생각으로는 수제비 따위는 내손으로 해 먹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실 별미로 수제비를 해 먹다니...
무엇이건 함부로 장담할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어쨋거나 라면 국물과 멸치가루 넣고 끓인 수제비 국물 맛은 민주당과 한나라당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보리밥과 함께 어려운 시절 끼니의 대명사였던 수제비가 요즈음은 질 높은 대우를 받는 걸 보면, 나이는 얼마 안 먹었지만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한때 최진실이 어려운 시절을 수제비로 견뎠다는 사실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수제비로 견딘 세월이 최진실 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 내릴 일이 있을는지...하하
그리고 최진실은 수제비만 먹고도 그렇게 잘 빚은 송편마냥 예쁜데, 나는 으째서 안 그런겨?????
밀가루가 다른가....
비 오는 밤에 실없는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