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맞선 에필로그...

오애도 2001. 8. 3. 01:04
생애 두번째로 선을 보고 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 소개팅이라든가 하는 건 몇 번-?- 해 봤는데 선이라는 것은 그것과는 다르게 훨씬 진지한-?- 작업입니다. 게다가 어른들이 중간에 끼어 있으면 그 진지함의 무게는 훨씬 큽니다.
상대는 아버지 병원에 계실 때 같은 호흡기 환자의 막내아들이었는데 옆에서 병구완하던 마나님이 나를 잘 보았다고 했습니다. 뭐를? 울 아부지하고 역시나 싸우기만-?-하고 왔는디...참... 쌈 잘 하는 것도 덕인가!!^^;;
어쨋거나 그 날 그는 임종만 남은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다 놓고 선을 보기 위해 나왔다고 했습니다.
참 기분 이상하더군요.
임종을 눈앞에 두신 양반을 놓고 선보러 나오는 기분은 어땠을까요.
한쪽에서는 삶을 접는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고, 반면에 한 쪽에서는 새로운 삶을 만들겠다고 서로 먼 곳에서 와서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라니...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상대가 쓰레기와 관련있는 직업-그래서 처음엔 혹시 환경 미화원아닌가 했었음-을 갖고 있는지라 열심히 쓰레기 소각과 분리 수거와 선진국의 환경 시설같은 얘기만 하고 왔습니다. 아마츄어 환경론자-?-인 나는 신나서 우리나라 환경정책이나, 사람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거품을 물었고 나중에는 정말 진지하게 어떻게 쓰레기를 처리하는지, 즉 태울 때는 어떻게 태우고, 젖은 쓰레기가 소각하는데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오수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눈을 빛내가면서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습니다. 선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무슨 세미나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에구 어디서나 드러나는 이 날라리 학구열!!!
어쨋거나 지금 생각하니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요.
나중엔 그사람 혹시 자기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게 아닐까하는 오해를 하게 한 것 같은 기분도 들더만요. ^^;;
아니면 반대로 워낙 단정적 어법에, 흥분하기 잘하고, 어려운 말까지 섞어가면서 거국적으로-?-미래 걱정을 하는 나를 보고, 데리고 살기-?-벅차다는 생각 들어 에구 상종 못 할 여자로군 하고 마음속으로 삼십육계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 옳은 얘기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닐테니까요.- 알면서도 안되는 이 知行合一-
그리하여 한 두어시간을 열심히 환경 세미나를 하는 중에 환자인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더 위독해졌다는 전활 받고 부랴부랴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내 생애 두 번 째 선은 막을 내렸습니다.
엄마 아부지 계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내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나는 무슨 마음으로 이 더위에 여길 내려왔는지 참으로 착잡해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진지하게 나에게 지금 결혼할 마음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해 봤습니다. 답은? 당연히 노오였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그걸 하게 되겠지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예감 같은 건 있습니다. 물론 그 예감 잘못 돼서 영원히 이렇게 우아하게 혹은 초라하게 혼자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혼자 살면 또 어떻겠습니까. 좀 더 있다가 진짜루 결혼 같은 것 안-못-하게 되면 기운 있을 때 나보다 힘든 사랑 돕는 봉사 활동 같은 거 열심히 하고, 장기 기증 서명 같은 것도 해놓고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갈 때 되면 힘 안들이고 가면 되는 것이지요. 울 아부지만 봐도 자식이나 가족이 있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 걸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자식이 어버이를,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해도 대신 할 수 없는 게 많은 것이 인간의 삶인걸요... 그리고 그 사랑땜에 더 많이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삶이란 어떤 형태이든 그걸 치러내는 자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 세상은 항상 상대적 가치가 우선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남 들 다 하는 것을 안하면 어딘가 모자라는 것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털끝 만큼도 그런 생각따윈 안합니다.
누가 뭐라든, 백명 중에 아흔 여덟명이 하는 것을 꿋꿋이 안하며 사는 두 사람이 훨씬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입니다. 남들 다 할 때 안하는 용기, 이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맞선이라는 걸 보면서 자꾸 두리번거리면 이것은 더 이상 용기가 아니라 여우와 신포도의 논리에 불과 한 것이겠지요.
자 그러므로 이제 그런 것 안 하겠습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그렇게 씩씩하게 살다가 어느 날 눈탱이 확 튀어나오는 남자 있으면 나도 울 엄마처럼 살게 되겠지요. ^^

사족:: 나랑 맞선 본 남자에게 내가 만약 올해 결혼과 등단 둘 중에 택하라면 난 당연히 등단을 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에 시비 걸지 않고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웃어 준 것 정말 고마웠습니다. 누가 뭐라든 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용기 주는 사람은 가장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