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가끔 이름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형제는...
오애도
2001. 7. 23. 02:17
엊그제 새벽에 막내 동생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틀 전에 불러서 저녁 한끼를 해 먹였는데 그때까지도 멀쩡했던 녀석이 누나 아퍼 죽겄어 하면서 다시 찾아 온 것입니다.
나이에 안 어울리게 이 녀석은 편도선을 호되게 앓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편도선이 화를 내면 거의 인사불성이 되도록 앓는 터라 제딴에도 미리 겁을 내고 있었습니다.
오한에, 열에, 가래에 물도 못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미련 떨지 말고 빨리 병원엘 가라고 야단을 쳐서 보내 놓고, 뜨듯한 국물을 먹어야 한다기에 추어탕 한 그릇을 사왔습니다. 그런데 추어탕은 손도 못대고 먹은 약도 죄 토하고... 참 난감했습니다.
하루종일 끙끙거리며 앓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 밑바닥이 자꾸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요. 피가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우리 집은 오남매 인데 남자 넷에 양념으로 딸 하나가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 아버지는 물론 형제들은 성격이 곰살궂지를 못해 상당히 무덤덤한 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땐 여러 형제들끼리 이것저것 서로 챙기고 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명절에 모여도 각자 플레이로 노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친구들 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만약에 우리들 중에 누구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모두들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기는 합니다. 주머니를 탈탈 털고 통장을 탈탈 털고 해서 말입니다. 형제간에도 돈은 남이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남의 얘기입니다.
어쨋거나 막내는 바로 형들과 엄마의 통장을 탈탈 털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한때의 -?-실수로 말이지요.
하지만 막내라서인지 항상 어린애같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서른인데도 그 막내라는 위치 때문인지 무슨 짓을 해도 귀여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별 말이 아닌데도 그녀석이 말하면 우리 모두 귀여워 어쩔 줄 모른다는 표정이 됩니다.
어느정도냐 하면 그 녀석이 열심히 돈을 까먹고 다닐 때, 그리하여 엄마가 피같이 번 돈마저도 빚갚기에 털어 넣게 됐을 때도 아버지께서는 어디 가서 도둑질이나 강도 아니고, 남의 돈 사기 쳐 먹고 뉴스에 나오는 인간 아닌게 얼마냐 다행이냐구 하셨습니다. 참 나... 어쩌면 이런 것들이 막내의 특권이자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은 본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존적이고,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베푸는 것에는 인색해 지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이 녀석에게는 그런 인색함은 없습니다. 다만 의존적인 부분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도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루면 나아지겠지요-음 상당히 누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발언이군^^-
어쨋거나 아픈 사람에 대해 조금씩 멀미가 나는 중입니다. 아버지한테 다녀온 그 다음날 인석이 찾아왔거든요. 과일도 사다주고 죽도 끓여주고 아버지한테는 한 적 없는-기회가 없어서-병구완을 했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론 내가, 부모 떨어져 객지에서 그렇게 몸 아플 때 찾아올 수 있는 누나자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이었으면 절대로 안 갔을 테니까요. 왜냐면 인석은 막내 자리에 안 어울리게 무신 응석 같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말도 별로 없구요. 아마 우리 식구들 중에 가장 과묵한 인간일 것입니다. 그러니 형들에게 하는 개김성-?-이 별로 없습니다.
음, 사주같은 걸 풀 때 형제성은 비견이라고 해서 경쟁자나 형제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는 형제는 경쟁상대이거든요. 부모의 애정을 놓고, 먹을 것을 놓고, 그리고 학교에 가져가야하는 크레용이 하나밖에 없을 때, 그래서 학교 가기가 싫을 때, 그때 나는 형제가 없고 나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먹어가며 그생각은 달라졌습니다. 사고를 쳐서 통장을 바닥나게 하는 녀석이라도 '누나'하고 찾아오면, 그것조차 애틋함으로 느껴지고 반대로 내가 힘들 때 그렇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형제라는 이름만으로 충분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은 역시 설명 안될 미혹입니다. 하긴 뭐 세상일이란 게 반드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설명되야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제는 닭 한 마리를 사다가 백숙을 했습니다. 막내가 좋아하거든요. 너무 더워 밖에다 상을 내놓고 먹었습니다. 다 먹고 빈 그릇 날라다주는 걸 보며 다 나았구나 했습니다.
바로 이틀 전에 불러서 저녁 한끼를 해 먹였는데 그때까지도 멀쩡했던 녀석이 누나 아퍼 죽겄어 하면서 다시 찾아 온 것입니다.
나이에 안 어울리게 이 녀석은 편도선을 호되게 앓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편도선이 화를 내면 거의 인사불성이 되도록 앓는 터라 제딴에도 미리 겁을 내고 있었습니다.
오한에, 열에, 가래에 물도 못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미련 떨지 말고 빨리 병원엘 가라고 야단을 쳐서 보내 놓고, 뜨듯한 국물을 먹어야 한다기에 추어탕 한 그릇을 사왔습니다. 그런데 추어탕은 손도 못대고 먹은 약도 죄 토하고... 참 난감했습니다.
하루종일 끙끙거리며 앓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 밑바닥이 자꾸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요. 피가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우리 집은 오남매 인데 남자 넷에 양념으로 딸 하나가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 아버지는 물론 형제들은 성격이 곰살궂지를 못해 상당히 무덤덤한 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땐 여러 형제들끼리 이것저것 서로 챙기고 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명절에 모여도 각자 플레이로 노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친구들 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만약에 우리들 중에 누구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모두들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기는 합니다. 주머니를 탈탈 털고 통장을 탈탈 털고 해서 말입니다. 형제간에도 돈은 남이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남의 얘기입니다.
어쨋거나 막내는 바로 형들과 엄마의 통장을 탈탈 털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한때의 -?-실수로 말이지요.
하지만 막내라서인지 항상 어린애같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서른인데도 그 막내라는 위치 때문인지 무슨 짓을 해도 귀여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별 말이 아닌데도 그녀석이 말하면 우리 모두 귀여워 어쩔 줄 모른다는 표정이 됩니다.
어느정도냐 하면 그 녀석이 열심히 돈을 까먹고 다닐 때, 그리하여 엄마가 피같이 번 돈마저도 빚갚기에 털어 넣게 됐을 때도 아버지께서는 어디 가서 도둑질이나 강도 아니고, 남의 돈 사기 쳐 먹고 뉴스에 나오는 인간 아닌게 얼마냐 다행이냐구 하셨습니다. 참 나... 어쩌면 이런 것들이 막내의 특권이자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은 본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존적이고,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베푸는 것에는 인색해 지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이 녀석에게는 그런 인색함은 없습니다. 다만 의존적인 부분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도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루면 나아지겠지요-음 상당히 누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발언이군^^-
어쨋거나 아픈 사람에 대해 조금씩 멀미가 나는 중입니다. 아버지한테 다녀온 그 다음날 인석이 찾아왔거든요. 과일도 사다주고 죽도 끓여주고 아버지한테는 한 적 없는-기회가 없어서-병구완을 했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론 내가, 부모 떨어져 객지에서 그렇게 몸 아플 때 찾아올 수 있는 누나자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이었으면 절대로 안 갔을 테니까요. 왜냐면 인석은 막내 자리에 안 어울리게 무신 응석 같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말도 별로 없구요. 아마 우리 식구들 중에 가장 과묵한 인간일 것입니다. 그러니 형들에게 하는 개김성-?-이 별로 없습니다.
음, 사주같은 걸 풀 때 형제성은 비견이라고 해서 경쟁자나 형제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는 형제는 경쟁상대이거든요. 부모의 애정을 놓고, 먹을 것을 놓고, 그리고 학교에 가져가야하는 크레용이 하나밖에 없을 때, 그래서 학교 가기가 싫을 때, 그때 나는 형제가 없고 나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먹어가며 그생각은 달라졌습니다. 사고를 쳐서 통장을 바닥나게 하는 녀석이라도 '누나'하고 찾아오면, 그것조차 애틋함으로 느껴지고 반대로 내가 힘들 때 그렇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형제라는 이름만으로 충분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은 역시 설명 안될 미혹입니다. 하긴 뭐 세상일이란 게 반드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설명되야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제는 닭 한 마리를 사다가 백숙을 했습니다. 막내가 좋아하거든요. 너무 더워 밖에다 상을 내놓고 먹었습니다. 다 먹고 빈 그릇 날라다주는 걸 보며 다 나았구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