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애도 2001. 7. 6. 00:38
며칠 쉬고 운동을 하러 갔었습니다.
땀을 두됫박쯤 흘렸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거금 만원이나 주고 내 머리통
세배나 되는 큼지막한 수박을 사고야 말았습니다.
사고야라고 강조 어조사인 야가 붙은 이유는 사실
나는 수박을 안 좋아합니다. 혼자 산지가 십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박이라는 과일을 내손으로,
나 먹자고 사본 적이 없었습니다.
음, 사람들이 시장엘 갈 때 배를 든든히 하고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배가 고프면 괜히 이것 저것 잔뜩
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옛말 그른거 없다고
결국 내 목이 말라서 그 커다란 수박을 사고 만것이지요.
그런데 수박을 씻어서 냉장고에 넣는데 그만 야채실
위의 유리가 쩍 하고 갈라졌습니다.
에그머니나...
안하던 짓을 짓을 꼭 이렇게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결국 비싼 수박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박을 사면서 생각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어릴 땐-?- 못했거나 안하던 짓을 슬슬 하기 시작한다
는 것 말입니다.
사실 나는 파를 싫어합니다. 아니 싫어한다는 것보
다 못-?-먹는다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어릴 땐 파가 들어가 있을 것 같은 예감만 들어도 그
음식을 먹을 때는 초긴장을 하게 됐었지요. 특히 만
두같은 속이 보이지 않는 음식은 파가 들어 있을 거란 예감만
들어도 그걸 일일이 터뜨려 파만 가려내고 먹다가 엄
마한테 혼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망이나 올리브를 싫어하는 짱구는 못말려에 나오는
짱구의 마음을 백 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사실 어른들은 자기 싫어하는 것 안 먹으면서 몸에
좋다고 아이들한테 먹기 싫은 것 억지로 먹이는 거
굉장히 불합리 합니다
각설하고, 그런데 지금은 그정도는 아닙니다. 설렁탕 같은데에 파가 들어 있으면 쓱쓱 건져내고 잘 먹습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옛날처럼 토하거나 하는 짓
따위도 안합니다.-사실 진짜 어릴 땐 토했습니다-
파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도 이제는 없습
니다.
나이 먹어가며 달라지는 것들에 식성이 있다는 얘기
는 들었지만 그걸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살아가는 일에 대해 능숙해진 탓인지 그리하여 여러가지 삶의 맛을 깨달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미각조차 닳고 닳아서
무덤덤 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를 보는 기준에 식성도 포함된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식성 까다로운 남자는 성질도 까다롭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수박 한 통을 사놓고 별 생각을 다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