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애도 2001. 7. 4. 02:34
길동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딘가 목적을 위해 가거나 혹은 그렇지 않고 목적없이 걸을 때 옆에 같이 가는 친구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을 길을 가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그 삶의 갈피갈피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야말로 길동무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길동무가 친구가 아닐는지...
흔히 여자는 상하 열두살 까지 친구가 될 수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12지지(자축인묘...)의 영향이라고 한다는군요. 반면에 남자들은 10간(갑을병정무기..)에 의해 상하 열살 까지 친구가 가능하구요.
그런의미로 보면 친구의 범위가 갑자기 넓어지는 것 같네요.
어쨋거나 친구는 길고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서 참으로 좋은 길동무들입니다. 그들 각자 다른 얼굴 다른 마음들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그들에게 비쳐지는 나의 의식의 다양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 라는 인간은 한사람인데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내 의식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만나면 기쁜 친구가 있고, 재미있기만 하는 친구가 있고, 늘상 무언가를 얻어오게 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무언가를 꼭 주게 되는 친구도 있습니다. 또 늘상 부딪히는 친구가 있어
만나고 오면 이틀쯤 기분이 영 엉망이 되게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반대로 서로 하는 일에 상당히 고무적인 발언을 해줘서 기분좋게 만들어 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반대로 내가 하는 일에 늘상 삐딱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저 친구가 날 사랑하기는 하는겨?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만나면 늘 문학과 비평이 주로 얘기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늘 연극 얘기만 하게 되는 친구도 있습니다. 내가 하는 잘난척에 별 반박없이 늘 겸손하게 듣기만 하던 친구가 얼마나 진정한 친구인가를 깨닫고 내가 겸손해지게 만드는 길든 구두같은 친구도 있습니다. 그친구앞에서는 세속적인 껄렁함이나 현학성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닫게 됩니다.그친구 나보다 열 다섯 배쯤 훌륭합니다.
나를 위해 십여년을 기도한다는 친구가 있고, 보잘것 없는 글을 언제나 최고의 글로 인정해주고 오랫동안 내가 그걸로 성공하리라고 끊임없이 믿어주는 오래된 포도주같은 친구도 있습니다.
단지 좋은 인간성이거나 본받을만한 행동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나이 많은 친구도 있고,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싶게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더 많이 눈에 띄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게도 배우는 것이 있으니까 역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 그럼 나는 어떤 친구일지 모르겠군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배울 점이 있는 인간이고 싶은데 마음 먹은 대로 안되는 것이 인간관계인 탓에 가끔 상처도 받고 또한 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나는 보기보다는 곰살궂은 성격이 아닌지라 이리저리 챙기고 단도리하는 것에 영 미숙한 탓에 잃어버린 친구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운명론자인 나.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것이라고 믿는 탓에 별로 아쉬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좀 싸가지가 없어 보이는 모양입니다.
I love school을 보구 몇몇 친구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답장을 보낸 친구도 있고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습니다.
학교다닐 때 유달리 잘 챙겨주었던 한참 어린 남자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장가도 가고 아이도 둘이나 있다고 합니다. 연극을 해서 먹고 산다기에 괜히 누나된 마음으로 걱정이 됐습니다. 그 친구가 생일선물로 준 컵은 아직도 상자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꺼내서 써야겠습니다. 지금은 헤어진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쓴 마음 절절한 편지가 그대로 상자속에 있더군요.
한 때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란 이렇게 일상이 한없이 따분할 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