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엊저녁에 양재천엘 갔었습니다.
빗방울 몇 개가 투덕거리길래 우산을 들고 갈까 하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 사이로 별 몇 개가 반짝이는 게 보였습니다.
그 전날에도 갔었는에 어찌하여 개나리가 흐드러진 것을 제대로 못 봤는지...
둑 위에 잘 손질해 놓은 개나리 나무에 꽃이 흐드러졌더군요.
군데군데 비쭉하니 서 있는 벚나무에도 꽃들이 막 피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날은 어느새 개어 하늘은 구름을 벗었고, 달이 세수 마친 아이얼굴마냥 말갛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언젠가도 말했듯이 나는 멍청하니 하늘 올려다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맑은 달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때는, 그리하여 내가 그녀-달... 설화속에서 달은 늘 여성을 표상한다-를 쳐다보고 있을 때면 세상은 태초처럼 고요해집니다.
비록 옆에는 개천물이 흐르고 가끔 강아지를 끌고 가는 인간들이 더러 지나가기는 해도 말입니다.
그러고 있으면 잠깐은 뻘처럼 딛고 살아야하는 발밑의 일상에 너그러워지기도 합니다.
한 이틀 기분이 삶지 않은 오래된 행주 같았습니다.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정신은 축 처져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살면서 관계에서 받는 상처에 늘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습니다.
그렇게 얻어맞을 때는 잠깐 아픈 척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엄살을 부리고 나는 다시 씩씩하게 살 것입니다.
그렇게 세 시간 가까이를 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발목 근육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그렇게 무거운 몸 이끌고 무시카게 걸으면 내비 안 둘겨?!!"
좋은 봄날 한 낮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