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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돈이 좋다! 본론 3 : 행복한 돈쓰기

오애도 2001. 6. 5. 00:39
몇 해 전에 그동안 한푼 두푼 모아서 적금을 탔었습니다. 적금 타기 두 달 전에 동생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오백만원을 확 꺼내서 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적금 타는 달은 11월 말 쯤이었고, 나는 그 나머지 돈을 가지고 유럽여행을 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적금타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먼저 그곳으로 여행을 갔던 친구가, 적금 타고 가면 그동네-유럽-날씨가 추울 거라고, 지금 (10월)다녀오는게 어떠냐며, 착하게도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돈을 빌려 여행을 간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돈은 여행 갔다와서 적금타자마자 바로 갚았지요. 나는 그 부분에 대해 그친구한테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행 중에 날씨가 캡으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럽은 11월부터 우기에 접어들어 추운 것은 물론이고 날씨가 형편없어서 사진을 찍어도 컴컴하니 흐리멍텅하게 나온다고 합니다.
어쨋거나, 내가 간 것은 가장 저렴한 가격의 팩키지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약간, 동네 계모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팀들과 같이 다녔는데, 우아한 싱글은 나 혼자였고, 게다가 가장 어리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웬 효도관광이냐며 툴툴댔는데, 아줌마들이 그것까지 귀여워해-?- 주지 뭡니까?
하여튼 여행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정말 노블하게-?- 다녀와야겠다는 새로운 욕구와 더불어, 이년후 쯤에 베낭 여행으로 차분하게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까지 두가지를, 돌아오는 배낭에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블하게 다녀올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배낭여행은 내가 다녀오고 그 다음 달에, 그 마(魔)의 아이 엠 에프가 터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끔 곰곰 생각합니다. 만약 그때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좀더 두툼한 저금 통장을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금 훨씬 행복할까?..
여행을 다녀온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행복과 기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여행 경비로 쓴 이백 오십만 원보다 훨씬 많은 오백만 원어치는 될 것입니다.
어쩌면 돈의 가치는, 내 손안에 쥐어 있을 때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남의 돈, 억 보다 내 돈 천 원이 더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잘 쓰기보다 악착같이 모으는 것에 매달리는 것인지도 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행복한 돈쓰기에 대한 개똥 철학이 있습니다. 돈을 쓸 때, 그것을 아까워하면 아무리 많이 써도 웬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차피 쓸 돈에 대해서는 깨끗이 포기합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지금 만원을 쓰지만 10만원어치 행복하다고... 그러면 그것은 분명, 남는 장사입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십만원 쓰고도 만원 쓴 만큼의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 선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남이 뭐란다고 고쳐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끔 분수에 안맞게 좀 비싼 물건을 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만원짜리 티셔츠를 사기 보다는, 오만원짜리 티셔츠를 사거든요. -사실 나는 좀 좋은 걸 사서 오래쓰자, 주의입니다- 돈때문에 이만원짜리 사면 일년 넘게 그냥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말 마음에 들어서 산 오만원짜리는 적어도 삼년은 음 이건 정말 마음에 들어 하고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마음에 들어서 오만원짜리를 샀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 생각이 걸려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앞에서 얘기한, 십만원 쓰고 만원어치만 건지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돈을 쓸 때의 진정한 행복은, 나를 위해서 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쓸 때라는 걸 어찌 모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