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이름은 영원하다. ^^

오애도 2004. 3. 30. 12:23

지난 주말에는 집엘 다녀왔습니다.

울아부지를 비롯한 조상님 산소에 석물을 설치-??-하는 날이었지요.

죽은 자가 산 자들의 삶에 주는 영향에 대해 시큰둥해 하는 젊은 자손들에 비해 울엄니는 그것을 당신의 마지막 역사로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걱정하시더니 드디어 일을 치러내셨습니다.

 

죽은 자가 차지하는 땅의 문제가 쟁점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혹은 변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런 석물에 자손들의 이름을 새겨 넣을 때 딸은 제외된다고 하더군요.

대신 사위 이름을 새겨 넣는다는데 하나 밖에 없는 딸년이 사위를 못 얻었으니 당연히 내 이름이 떡 하니 올라갔습니다.

울엄니 말씀

"없는 사위를 미리 정해 올릴 수도 없고 그냥 네이름을 올리기로 했다... 저게 우리는 다 죽어 없어져도 몇 백년 동안 남는 겨"

물론 그 몇 백년 혹은 몇 십년 동안 돌덩이에 이름 남아 있는 게 무슨 대단한 거랴 싶지만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니까 길어야 백년도 안 되는 인간의 기억력에 비하면 그래도 오랫동안 이 험함 세상에 내 이름이 굴러다니겠는 걸요.

 

나는 별로 울아부지한테 미안한 거 없는데, 딱 하나...  예식장에 딸래미 손잡고 들어가는 거 못 해보게 한 것에 대해서는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인간입니다.

그럴 때마다 정상적인-????-다른 딸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뭐 나야 사위 없는 거에 대해 미안하진 않았지만 울엄니 심정이야 착잡했겠지요.

우익 보수이자-??-소리치지 않는 페미니스트인 나는 딸이름은 안 쓰고 사위 이름을 쓴다는 말에 한참 붕붕거렸었습니다.

"아니, 내가 울아부지 자식이고 울아부지 피를 이어받은 거지, 생판 모르는 넘의 집 아들이 어찌 내 대신 올라가는 겨?"

"원래 그러는 겨..."

"원래 그런 건 뭐가 그런겨. 잘못 된 건 고쳐야지..."

 

끝나고 제 지낼 때, 울 큰아부지 세 번 잔 올리는 것이니 나는 올리지 말라고 하는 걸 다 끝내고 한 잔 올렸습니다.

"나 안 올리믄 울아부지 섭섭하셔요... 근디 울아부지 술 못 자시는디 취하시겄네."

했더니

"저승에서는 취향이 바뀌시는겨"

울 큰어머니 말씀.

 

생전에 커피 좋아하셨던 울아부지.

산소에 갈 때마다 커피를 가져가자고 실없는 소리를 했었는데 다음엔 정말로 커피 한 잔 타서 드려볼까 생각중입니다. ^^

 

하여 햇빛 따뜻한 곳에 누워 계신 울아부지 기쁘셨겠지요.

 

몇 백년-???-동안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남아 있을 내 이름....

吳愛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