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가끔은 정말 남자가 필요하다! 마지막이야기

오애도 2001. 5. 25. 00:16
열무김치가 하룻만에 맛있게 익었습니다. 뚜껑 꼭 닫아 냉장고에 넣어 놓았습니다. 천원어치 열무가 장난 아니게 많은 탓에-오죽했으면 힘좋은 남자 생각이 났겠습니까?-커다란 플래스틱 통으로 하나 가득이었습니다. 이걸 누구랑 먹을까를 고민하다가 여기저기 친구에게 열무김치 먹으러 오라고 꼬셨습니다.
두 해 전까지 나보다 훨씬 화려한 싱글생활을 구가하다가, 시집을 간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거짓말 안보태고 그 친구가 결혼 날짜 잡아놓고 하던 말은 늘상 이것이었습니다.
시집간다고 뭐가 좋겠니? 게다가 이 나이에... 나이드신 우리 어머니, 막내딸 시집가는게 소원이라니까 못이기는 척 가는 거지. 그리고는 한숨을 폭폭 쉬었습니다.
나는 시집도 안간 주제에 그래도 혼자 살아서 좋은 것을 상쇄하는 뭔가가 반드시 있을 거야, 게다가 너처럼 아무런 기대 없이 가는게, 장밋빛환상을 갖고 가는 사람보다는 대개 행복하게 살지, 어쩌구 위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 괜히 호들갑을 떨었던건 아닐것입니다.-아니 진짜로 호들갑이었나?-
지금은 알라-아기-를 뱃속에 담고 있고, 그때문인지 혼자 살 때보다 서른 여덟배쯤 행복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우아한 싱글이었을 때 불행해 보였는가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가지 않은 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예측도 짐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면 그친구처럼 서른 여덟배 쯤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삼백 팔십 배쯤 불행할 지도 모르지요.
싱글이 초라하다고 느낄 때는, 남들 다 가는 길을 나혼자 못가고 있다고 느끼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보다 그 가보지 않은 길에 더 눈독을 들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하지만 누가 뭐라든 결국 길이란, 우리가 걸어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어떤 길이든 나름대로 의 얼굴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답고 좋은 길인지는, 두 길을 공정하게 걸어가 보지 않고는 절대로 모르겠지요.
그 친구가 서른 여덟 배 행복해 보인다고, 음 그게 이것보다 나은개벼, 하고 나도 그길로 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안생기는 걸 보면, 나도 그녀만큼 행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알맞게 익은 열무김치 한 보시기를 싸주었습니다. 집에 가서 신랑하고 호박나물해서 맛있게 비벼 먹으라구요. -넘의 신랑까지 챙기는 이 오지랖-
결혼하면 지금보다 나을지, 모자랄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거 해결하기 위해 결혼할 수는 없는일. 정말 뒤통수 퍼억 맞아서 눈탱이가 튀어나오고, 저 사람하고 사는게 이렇게 우아하게 사는 것보다 삼천 육백 오십 배 행복할 거야라는 정신나간 확신이 들면 그때는 이길을 접을 생각입니다^^;;